[시론]김정호/고3, 그대 앞의 끝없는 門들

  • 입력 2005년 12월 17일 03시 01분


코멘트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는 피터 호윗 감독의 1998년도 작품으로 매력적인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주연을 한 영화다. 이 영화는 주인공 헬렌(귀네스 팰트로)이 지하철역에서 전동차의 문(슬라이딩 도어)이 닫히는 순간 간신히 타게 되는 경우와 간발의 차로 타지 못하게 되는 경우로 나누어서 각 경우에 서로 다르게 진행되는 헬렌의 두 갈래 인생을 번갈아 보여 준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순간의 선택에 의해서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 선택이 나쁜 결과를 불러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한다. 혹은 부정적 결과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위(혹은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했더라면’ 하고 원망할 것이다. 특히 선택의 결과가 큰 영향력을 갖는 경우에는 후회나 원망의 강도가 더 크며 후회나 원망도 더 오래간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선택에 따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나의 태도와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나의 태도와 행동 역시 나의 선택이고 그 선택은 또 다른 결과를 불러오며, 이러한 선택과 결과의 반복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지만,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수없이 많은 황금 잎이 떠내려오는 냇가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만 황금 잎을 건져 갈 수 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자신의 부주의나 옆 사람의 방해로 자기 앞으로 오던 황금 잎 하나를 놓쳤을 때, 이미 흘러간 황금 잎을 돌아보고 안타까워하고 그것을 놓친 데 대한 자신의 부주의를 자책하거나 옆 사람의 과실을 원망하고 있다면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떠내려오고 있는 다른 많은 황금 잎을 그냥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또 다른 황금 잎을 놓친 것도 첫 번째 황금 잎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게 된다. 또 자책과 원망은 시간이 갈수록 눈 덩이처럼 커져 갈 것이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된 주부가 있었다. 부자가 된 그녀는 집을 팔고 크고 좋은 저택으로 이사 갔다. 그런데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며 당첨금을 가져가 몽땅 날려버렸다. 게다가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됐고 그녀는 예전에 살던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가끔 신문에서 보는 얘기다.

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만족한 학생도 있겠지만 실망한 학생도 많을 것이다. 수능 결과가 좋지 않아 자신이 원래 원하던 대학이나 학과는 아니지만 올해 입학하기로 한 학생도 있을 것이고, 한 해를 더 공부하기로 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만 후회나 자책 또는 원망이라는 선택은 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의 선택이 그 후의 모든 결과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훗날 뒤돌아보면 자신이 원래 원하지는 않았던 대학이나 학과에 가게 된 것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며, 재수를 하게 된 것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슬라이딩 도어즈’ 영화에서는 전동차의 문 안으로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일회적 사건만으로 갈라지는 인생의 행로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한 번에 하나가 아니라 여러 문이 놓여 있다. 또한 우리 인생에서 문은 한 번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이 놓여 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문을 선택하고 있는가.

김정호 건강심리전문가·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