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는 일 저지르고, 뒷감당은 국민이 하나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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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는 발암 의심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되지 않은 송어와 향어의 시장 출하를 허용하거나 시가(時價)로 수매하겠다고 밝혔다. 먹기 꺼림칙하게 만들어놓고는 먹어도 괜찮다는 ‘검사증명서’를 발급해 유통시키겠다는 얘기다. 어민들이 시중 유통을 마다하면 정부가 모두 사들여야 한다. 결국 수산발전기금이라는 혈세로 조성된 돈을 52억 원이나 써야 할 판이다.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된 물고기는 모두 수거해 폐기하되 대신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이 또한 세금에서 나간다.

넉 달 전까지만 해도 해양부는 어민용 교재를 통해 어류용 살균제로 말라카이트그린을 권장해 왔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따랐다가 피해를 본 어민들이 얼마나 억울할지 이해된다. 내수면양식협회 회원들이 “말라카이트그린 검출 물고기도 정부가 전량 사들여 폐기하지 않으면 강경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만하다.

어민들은 어느 정도 피해보상이라도 받지만 납세자로서의 국민은 뭔가. 말라카이트그린을 쓰라고 권장한 공무원들, 그리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높은 사람들은 왜 책임지지 않는가. 어째서 잘못은 정부가 저지르고 뒷감당은 죄 없는 국민이 해야 한단 말인가.

두 달 전 중국산 수산물에서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됐을 때 오거돈 해양부 장관은 “선진 위생관리체제인 위해(危害) 중점관리 제도를 양식장에 확대 적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만 그럴듯했을 뿐이다. 해양부가 새로 내놓은 수산물 안전성제고협의회 구성, 수산식품안전대책 검토 방안 역시 상투적인 전시행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달 초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좋은 소리 못 들은 ‘중국산 유해식품 근절을 위한 수입식품 안전관리대책’도 총론에 그쳤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정부가 세금만 자꾸 올리려 드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계속되는 정책의 시행착오를 덮으려면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이한 자세에다 잘못된 행정에 책임지지도 않는 공무원들의 연금까지 메워 줘야 하는 국민만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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