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간보다 썩은 公기업, 정부가 조장했다

  • 입력 2005년 10월 12일 03시 10분


어제 끝난 국정감사는 ‘삼성 국감’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정권과 코드가 닮은 일부 시민단체는 삼성 등 민간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끈질기게 공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를 주는 공기업의 폐해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공기업 비리는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적자(赤字)기업까지 적정 몫보다 훨씬 많이 챙겨가며, 정부 지침을 무시하고 노사 간 이면(裏面)계약으로 임금을 대폭 올린 곳이 많다. ‘이 좋은 직장’을 남 주기 아깝다며 ‘직장 세습’에 열심이다. 설계 변경으로 하청업체 공사비를 부풀리는 비리의 사슬도 이어진다.

역대 정권의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의 폐단을 키웠다. 문제가 누적돼 있는 터에 노 대통령은 ‘경험 부족이 오히려 장점’이라며 또다시 낙하산 부대를 양산했다. 유시민 의원은 “낙하산 부대라고 다 나쁜 게 아니다”고 내놓고 두둔했다. 업무와 무관한 정치 주변인물에게 매출이나 예산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공기업 경영권을 쥐여 주었으니 정상 경영을 기대할 수 없다. 낙하산 경영진은 노조와 결탁하고 감독관청을 삶는다.

공기업의 문제점은 정부나 국회도 알고 있다. 감사원은 예산낭비, 투자실패, 과도한 나눠먹기 등을 수도 없이 잡아냈다. 7월 발표된 173쪽짜리 ‘경영혁신 실태조사’에도 44개 기관의 잘못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이런 폐해는 모두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지만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는 제대로 수술하려 들지 않는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런 공기업보다 민간 대기업을 표적으로 삼는 배경도 석연치 않다. 공기업 사장은 문제가 불거져도 “시정하겠습니다”만 외치면 몇 년을 버틴다.

노 정권의 민영화 백지화가 공기업의 부실·비리·부패를 부채질했다고 본다. 노 정권은 인수위 시절부터 재벌개혁을 구실로 민영화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외쳤다. 1년 뒤엔 37일간 파업한 노조에 밀려 한전 민영화 중단을 선언했다. 때마침 총선을 앞두고, 세계적 추세인 민영화를 통한 공기업 개혁을 포기하는 대신 친(親)노조 이미지와 표(票)를 택한 것이다.

노 정권은 한풀이, 역사뒤집기, 1등 때리기에 바빴는지 민간기업보다 비효율적이고, 지배구조도 더 나쁘고, 더 많은 불공정거래를 일삼고, 국민에게 직접적인 충격과 부담을 주는 공기업은 그냥 두었다. 국민과 공무원과 노조를 설득할 자신과 리더십이 애당초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공(公)의 확대와 경제의 국가 주도’라는 좌파적 이념 때문인가.

‘로드맵 정부’라고 자처하는 노 정권은 공기업 개혁에 어떤 ‘행동계획’이 있나. 공기업 평가개선이나 감독강화 정도를 개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위원회에 인사와 경영평가 등을 맡기는 방안도 ‘무늬 개혁’일 뿐이다. 국민은 더는 ‘그들만의 잔치’에 샴페인을 대줄 수 없다. 민영화 후퇴가 정권의 과오로 남을 것임을 우리는 예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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