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날 국회에 간 것은 국회의 ‘출석 요구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대법원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참고인 자격으로 나와 후보자에 관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해 달라는 것이다. 처음 가 본 국회의사당 본관은 으리으리했다.
오후 4시쯤 행사가 끝나 이쪽저쪽 출구를 찾다가 본관 현관으로 나왔다. 10여 m쯤 걸었을 무렵 갑자기 돌부리 비슷한 것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자세히 보니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명패였다. ‘국회의장’ ‘○○ 운영위원장’ 등의 글씨가 새겨진 명패 6, 7개가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무례한 발! 높으신 분들의 직함을 감히 차다니….”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어 얼른 그 아래 계단으로 내려왔다. 계단 아래 바닥은 일반 주차장인데 빈자리가 많았다.
내려와서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왜 국회의장 자리가 거기에 있을까?
잠시 후 이유를 알게 됐다. 검은색의 웅장한 승용차가 명패 앞에 멈춰 섰다. 그러니까 그 명패는 ‘높으신 분들’의 지정 주차 장소를 나타내는 명패였다.
다시 50여 m 더 걷다가 뒤돌아보았다. 국회 본관이 정면으로 보였다. 바닥에 너비 50m, 높이 10m쯤 되어 보이는 화강석 계단이 있고 그 위에 기단이 있었다. 기단 위에는 30여 m 높이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대형 돔이 보였다.
문제의 명패와 주차장은 기단 앞부분에 있었다. 좀 더 떨어져서 정면을 봤더니 본관 3분의 1쯤 되는 높이에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 멀리서 보니까 국회 건물에 승용차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문득 2003년 여름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을 방문했을 때 일이 떠올랐다. 미국 의사당은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그곳에는 바닥주차장을 제외한 건물 어느 곳에도 ‘높은 분’을 위한 주차장이 따로 있지 않다. 현관 앞의 계단과 기단이 한국 국회 본관보다 훨씬 넓은데도 아무것도 없다. 그곳의 주인은 시민과 관광객이다.
위치가 좋은 곳에 의원 전용 주차장이 있기는 하다. 본관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는 명패 대신에 ‘도메스틱 카 온리(Domestic car only)’라는 푯말만 보였다. 미국 국산차를 이용하자는 애국심에서 그런 것 같았다.
인터넷을 뒤져 영국 템스 강변에 있는 의사당 건물을 살펴보았다. 건물 바닥 위 어디에도 차를 세워 놓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국 국회의사당을 생각하며 좀 ‘불경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한국 국회 본관 기단 위의 명패와 승용차는 한국 국회와 다른 나라 국회의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국민보다 높아야 한다는 생각과 국민 앞에 스스로 낮추어야 한다는 의식의 차이를….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