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문제는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북한은 경수로를 받지 못하면 핵무기 및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발표해 6자회담의 성공을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4차 회담 기간 내내 발목을 잡았던 경수로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며 과연 이번 회담의 결과가 1994년의 북-미 기본합의(제네바 합의)를 뛰어넘는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6자회담의 타결과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실타래가 아님을 보려면 이번에 합의된 6개 항의 공동성명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제1항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재확인하면서 핵무기 및 관련 프로그램의 포기와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독체제 안으로 북한을 복귀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항의 일부와 2, 3항은 북한의 핵 포기를 실질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상응조치’를 포함하고 있는데 대북 에너지 제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며 전자는 2000년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 때 이루어졌던 ‘매들린 올브라이트-조명록 공동선언’을 연상시키고 있다. 4항부터 6항까지는 앞으로 북핵의 포기를 실질적으로 담아 낼 ‘절차’와 ‘실행’에 대한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상을 통해 볼 때 북한은 가장 기본적인 1항의 내용에 대해 당초와는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얘기를 한번 뒤집어 보자. 왜 북한은 아예 4차 회담을 무산시키지 않고 공동성명에 합의는 한 채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핵 포기와 NPT 복귀가 선행되지 않고는 공동성명에 제시된 다양한 ‘혜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북한으로서는 11월 초에 열리게 될 제5차 6자회담에 앞서 자신이 얻어야 할 것에 대한 의제 선점이 절실했을 수도 있다. 북한의 ‘뒤집기’ 성명이 나온 직후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이 며칠이 아니라 ‘몇 주 동안’ 북한의 태도를 주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어떤 협상에서도 원칙에 대한 합의보다는 세부 사항에 대한 동의를 도출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특히, 협상 당사자들 간의 신뢰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을 경우 세부 사항들에 대한 갈등은 원칙에 대한 합의까지도 흔들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원칙의 합의를 위해 남겨 두었던 세부 사항들에 대한 ‘모호성’이 앞으로도 계속 발목을 잡을 개연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미 부각된 경수로 논의 시기에 대한 논란과 더불어 북한의 NPT 복귀 시점, 그리고 다양한 상응조치의 시행 순서 등은 앞으로 남은 회의들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 |
이라크에 대한 핵 사찰에서도 단락이 있긴 했으나 1991년 5월부터 2004년 4월까지 무려 1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번 회담에서 적잖은 이해와 노력을 보여 준 미국의 방침이 반전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또 이번의 합의 타결로 6자회담의 틀을 더욱 중시할 수밖에 없게 된 중국의 외교력을 좀 더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내부적 설계와 다짐이 새로이 필요한 때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국익’―북핵의 제거―제고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재호 서울대 국제정치학 교수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