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67>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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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참 뒤에 갑자기 동문 근처의 한군(漢軍) 진채가 무너지는 것 같더니 곧 횃불을 밝혀 든 군사 한 갈래가 문루 아래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성문을 열어라. 임치에서 온 원군이다.”

전해가 그 소리를 듣고 눈길을 모아 문루 아래를 내려다보니 횃불 사이로 어른거리는 기치와 복색이 모두 제나라 군사의 것이었다. 그러나 북문 쪽에서 한 번 속임수에 당한 뒤라 얼른 성문을 열어 줄 수 없었다.

“이놈들 누구를 또 속이려 드느냐? 누구든 제나라 기치와 복색만 걸치면 모두가 제나라 군사라더냐? 바위 우박과 화살 비를 맞기 전에 어서 물러가라!”

전해가 어림짐작으로 그렇게 몰아세워 보았다. 그때 어디서 본 듯한 기호(旗號) 아래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군,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화(華) 거기(車騎)를 따르던 중연(中椽) 서창(徐昌)입니다. 어서 성문을 열어주십시오.”

전해가 들으니 알 만한 이름이었으나 그래도 아직 믿을 수가 없었다.

“이놈, 화무상의 군사는 모두 적에게 항복했다. 너도 화무상을 따라 한나라의 개가 되었으면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 드느냐?”

다짜고짜로 그렇게 꾸짖기부터 했다. 서창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화 거기가 항복했다고 해서 모든 장졸이 다 한나라에 항복한 것은 아닙니다. 태반이 임치로 달아났다가 이제 원병을 얻어 이렇게 돌아오는 길인데 어찌 저희를 이리도 박절하게 대하십니까?”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몇몇 귀에 익은 목소리가 더 들려왔다.

“저는 낭장(郎將) 공상(孔祥)입니다. 서(徐) 중연과 함께 임치로 피했다가 이제 이렇게 원병을 안내해 돌아오는 길입니다.”

“저는 대장군의 싸움수레를 몬 적도 있는 구장(廐將) 이특(李特)입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겠습니까? 대장군, 어서 문을 열어주십시오. 적이 언제 전열을 정비해 다시 몰려들지 모릅니다.”

그때였다. 정말로 그들 후미에서 다시 횃불이 모여들며 대군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문루 아래서의 외침은 더욱 간곡하고 애절해졌다.

“장군, 적이 다시 몰려옵니다. 어서 성문을 열어주십시오.”

“여기서 개죽음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 우리를 성안에서 함께 싸우다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찌할 줄 몰라 문루 위를 오락가락하던 전해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성문을 열어주어라!”

전해가 그렇게 소리치자 무거운 성문이 열리고 문루 아래 몰려들었던 수천 명의 군사가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에는 낯익은 얼굴이 많고 화급하게 쫓겨 들어오는 게 원병으로 온 제나라 군사들 같았다. 그런데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바짝 뒤따라오는 한군을 들이지 않기 위해 성문을 닫으려 할 때 갑자기 변괴가 일어났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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