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62>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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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온몸이 투지로 뭉친 것 같은 관영이 기마대를 휘몰아 뒤쫓아 오자 화무상(華無傷)은 더욱 급해졌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한편인 전해(田解)가 지키는 역성 쪽으로 말 머리를 돌리고 정신없이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오래 달아날 팔자는 못되었다. 갑자기 눈앞에 수풀처럼 깃발이 솟아오르는 것 같더니 한 갈래 인마가 길을 막았다.

“한(漢) 우승상 조참이 여기서 너희를 기다린 지 오래다. 적장은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앞선 장수가 큰 칼을 뽑아들고 그렇게 소리쳤다. 놀란 화무상은 얼결에 말 머리를 돌려 맞은편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몇 번 말의 배를 차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니 어느새 관영의 기마대가 앞을 막고 있었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게 된 화무상은 굴러 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관영에게 항복했다. 화무상을 따르던 장수와 이졸들도 모두 관영의 기마대에 사로잡혔다. 무기를 거두고 헤아려 보니 화무상을 빼고 사로잡힌 제나라 장리(將吏)만도 합쳐 마흔 여섯 명이나 되었다.

바깥에서 그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깊이 잠들어 있던 역성이 깨난 것은 화무상이 사로잡히고 그 진채가 한군에 의해 완전히 쑥밭이 된 뒤였다. 문루 위에서 졸며 파수를 서던 제나라 도위(都尉)가 먼저 성 밖의 소란을 알아차렸다.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나와 가만히 살펴보다가, 화무상의 군사들이 기습당해 이미 가망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놀라 성안으로 되쫓겨 들어갔다.

“장군, 장군. 큰일 났습니다!”

그 도위가 한달음에 전해를 찾아보고 숨넘어가는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잖아도 왠지 성 밖의 수런거림이 심상치 않아 문루 위로 나가 보려던 전해가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이같이 요란을 떠느냐?”

“적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성 밖에서 기각지세(기角之勢)로 진채를 펼치고 계시던 화무상 장군이 적의 기습에 당한 것 같습니다.”

“적이라니? 어디서 온 적이 이 새벽에 화(華)장군의 진채를 덮쳤다는 것이냐?”

“한나라 군사 같습니다. 사방이 온통 붉은 깃발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러자 전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혹시 무엇을 잘못 본 것은 아니냐? 한군이 왜 서쪽으로 가서 항우와 싸우지 않고 이리로 쳐들어왔단 말이냐? 우리 대왕께서는 한왕과 함께 항우를 치기로 하지 않았느냐?”

“저도 그게 통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무상 장군의 진채를 급습한 것은 틀림없이 한군입니다. 한(漢) 우승상 조참이란 기호(旗號)까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때 다시 이졸 하나가 뛰어들어 전해에게 알렸다.

“동문 문루(門樓) 아래서 조나라 상국(相國) 한신이라는 장수가 대장군을 찾고 있습니다.”

그제야 전해도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한신이라고? 한신이라면 한나라 대장군 한신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한군이 제나라로 쳐들어 왔다는 것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동문 문루로 나가 보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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