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순원]강한 여자, 예쁜 남자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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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무심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결혼요? 잘 모르겠어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결혼은 관심 없어요.”

한 케이블 채널에서 젊은 여성들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슨 얘기일까? 왜 혼기가 찬 여성들이 결혼에 관심조차 없는 것일까. 인터넷 쇼핑몰 대표에서 브랜드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종사하는 분야는 달랐지만 생활 방식과 가치관은 비슷했다. 꽉 짜인 그녀들의 24시간은 연애할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

서른을 조금 넘긴 그녀들을 그 프로그램에서는 ‘콘트라섹슈얼(Contra Sexual)’이라 불렀다. 반대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 콘트라와 성(性)을 의미하는 섹슈얼을 조합한 단어로 영국의 미래학연구소가 만들어냈다. 결혼이나 육아보다는 사회적 성공과 고소득을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여성들을 일컫는다.

널리 알려진 영화와 TV 드라마의 대조적인 두 인물이 ‘콘트라섹슈얼’을 잘 설명해 준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등장하는 브리짓 존스도 결혼하지 않고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녀는 결혼을 갈구하는 노처녀일 뿐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는 ‘섹스 앤드 시티’에는 사만다 존스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홍보대행사를 경영하는 그녀가 가장 겁내는 것은 사귀는 남자가 결혼하자고 하는 것. 일반적 시각으로 그녀의 사생활은 다소 불량해 보인다.

영국의 사회 인류학자들은 이런 유형의 여성들이 21세기에 부상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광고업계나 마케팅 담당자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들은 싱글 여성 시장의 잠재성을 일찌감치 꿰뚫고 있다.

지난해 큰 증가세를 보인 국내 기업들의 여성 인력 채용 규모를 살펴보자. 삼성그룹은 대졸 신입사원 채용에서 30% 수준인 2400명을 여성으로 채용했다.

뽑기만 많이 뽑는 것은 아니다. 파격 인사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종종 등장한다. 일부 이동통신사는 여성 임원을 늘리거나 한 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여성을 경영자급 임원까지 키워낼 정도의 기업이라면 적어도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투자자들은 여성 임원의 유무를 따진다. 여성 임원의 보유를 기업공개(IR)시 평가항목에 포함시키는 기업도 있다. 바야흐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강한 여성인 ‘콘트라섹슈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메트로섹슈얼’이 있다. 패션과 외모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남성 혹은 그 추세를 일컫는다. 메트로섹슈얼 성향의 남성들은 외모 치장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피부와 헤어스타일 관리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여성들은 성취 지향적으로 변하는 반면 남성들은 외모를 가꾸며 섬세한 감성을 키우고 있다. 즉 남녀가 서로 닮아가면서 양성형 인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 교수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씨는 그녀의 저서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의 역사’에서 “남성이 된다거나 여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지위, 사회적 위치, 문화적 역할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생물학적으로 한 존재에 대치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다’라는 절대진리 같은 규칙도 깨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양분하는 것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가해자와 피해자 등…. 어쩌면 인간 분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순원 보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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