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200년 만의 승리’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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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10월 21일 허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27척)와 나폴레옹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33척)가 지중해 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에서 맞섰다. 넬슨은 함대를 둘로 나눠, 수적으로 우세한 적의 배후를 공격했다. 넬슨이 내린 공격명령은 “영국은 제군들이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기를 기대한다”는 짧은 메시지였다. 치열한 전투에서 넬슨은 저격병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승리를 확인한 넬슨은 숨을 거두기 전 “이제 저는 만족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저는 제 임무를 다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트라팔가르 해전(海戰) 207년 전인 1598년 11월 19일 ‘노량 해전’에서 적탄을 맞은 이순신은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은 것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 뒤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이순신이 있었기에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넬슨이 있었기에 영국은 나폴레옹의 침공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라를 구한 명장(名將)은 시대와 동서(東西)를 초월해 닮은 모습을 보이는 듯싶다.

▷영국 그레이터런던 웨스트민스터 시에 있는 트래펄가 광장은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엊그제 이곳에 런던 시민들이 모여들어 ‘200년 만의 승리’에 환호했다는 소식이다. 2012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런던이 예상을 깨고 파리에 이긴 것인데 때마침 ‘넬슨의 승리’ 200주년과도 맞아떨어지니 영국인들은 두 배의 승리감을 만끽했을 터이다.

▷14∼15세기에 걸친 ‘100년 전쟁’ 이래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앙숙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기에 영국은 환호하고 프랑스는 슬픔에 젖는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위상은 높아진 반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2차 투표에서 탈락한 뉴욕의 표가 런던으로 간 것으로 분석되면서 미국-영국-프랑스의 관계도 재조명된다. 넬슨은 지하에서 이런 ‘200년 만의 승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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