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02>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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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연이틀 힘을 다해 섭성을 들이쳐도 끄덕 않자 패왕 항우는 더욱 성이 났다. 사흘째부터는 뒤에 있는 시양졸(시養卒)까지 모두 끌어내어 성벽 위로 내몰았다.

성난 패왕이 초군(楚軍)의 무서운 전투력을 모두 끌어내 들이치니 섭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벽이 든든하고 군량이 넉넉하다 해도, 밤낮 없이 이어지는 맹공에 먼저 사람이 견뎌내지 못했다. 에워싸인 지 닷새가 지나자 성안의 군민(軍民)이 아울러 지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섭성이 초군에게 에워싸인 지 이레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도 한군은 아침부터 사면에서 공격을 퍼붓는 초군 때문에 힘든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해질 무렵 갑자기 서문 쪽의 초군 뒤편이 어지러워지더니, 이어 동 남 북 세 곳을 죄어오던 초군의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어디서 온 군사들인지 모르나 서문 쪽 초군을 뒤에서 들이치고 있습니다. 남문과 북문 쪽의 초군이 서문 쪽을 구원하려 군사를 빼고 있습니다.”

성벽 위 높은 망루에서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던 군사가 그렇게 알려왔다. 한왕이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초나라 군사들과 싸운다면 우리 우군이다. 어디 군사들인지 알 수 없는가?”

“너무 멀어 기치나 복색을 잘 알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전갈을 가져온 군사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때 곁에 있던 장량이 말했다.

“아마도 구강왕 경포의 군사일 것입니다.”

“경포는 이곳에서 200리나 떨어져 있는 완성을 지키고 있소. 뿐만 아니라 과인처럼 성벽을 높이고 싸우지 않는 것을 계책으로 삼아 굳게 지키기만 하기로 되어 있소.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군사를 낸단 말이오?”

“항왕의 그늘에 묻혀 그렇지, 구강왕도 전투력이 엄청난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항왕에게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은 원한이 있는데 어찌 성안에서 항왕의 등짝만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아마도 정병 몇 천 명을 이끌고 기습을 나왔을 것입니다. 서쪽에서 왔다면 구강왕의 군사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한왕이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문을 열고 구원을 나가야 하지 않겠소? 항왕이 이 섭성을 에워싸고 있던 군사를 모두 휘몰아 덮치면 구강왕이 크게 위태롭게 될 것이오.”

장량이 별로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구강왕 경포는 지난날 장강(長江)가에서 무리와 함께 수적(水賊)질을 할 때, 여러 번 진나라 관병(官兵)에게 쫓겨 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무리로 큰 군사에 맞서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잘 알 것이니, 대왕께서 크게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구강왕이 우리에게 한숨 돌릴 틈을 선사한 것쯤으로 여기시고, 성안을 단속하여 농성채비나 한층 단단히 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항왕이 제 성품을 못 이겨 무리하게 군사를 부린다면 그때는 대왕께서도 구강왕을 위해 따로 하실 일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떤 일이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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