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민주주의 전초기지 몽골

  • 입력 2005년 7월 2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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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되지만 독자들께 퀴즈를 하나 내고 싶다. 지구상에 최초로 등장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독재국가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옛 소련이다. 그럼 두 번째는?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는 김일성대학 출신의 후배 기자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답은 몽골이다. 1924년 소련의 붉은 군대와 힘을 합쳐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가 됐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개방 바람과 함께 몽골에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기운이 불어 닥치자 몽골인민혁명당(MPRP)은 1990년 일당독재를 버렸다. 1996년엔 야당이 승리해 MPRP의 75년 일당 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5년 5월 22일 대통령 선거. MPRP는 ‘민주 선거’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MPRP의 남바린 엥흐바야르 후보가 ‘개혁파’를 자처한 세 후보를 제치고 당선된 것이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존 타시크 연구원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6월호에서 몽골이 ‘아시아의 민주주의 전초기지(Outpost of Democracy)’가 됐다고 표현했다.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라고 부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말을 재미있게 원용한 것이다.

신문사에서 숱한 외신을 읽고 있지만 몽골에 관한 뉴스를 접하는 일은 드물다. 타시크 연구원의 글을 발견하는 순간, 마치 대형 서점의 한 귀퉁이에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찾아낸 것처럼 기뻤다. 1998년 몽골의 초원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시원(始原)의 감동’도 되살아났고, 그때 들었던 ‘몽골의 형제애’도 다시 생각났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으로 대사관을 철수하려 하자 몽골 정부가 공관 운영 경비와 차량 유지비를 지원해 줄 테니 ‘철수’ 얘기만은 꺼내지 말라고 만류했다는 것이다. 몽골도 가난한 나라다. 그런 나라지만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 우정을 가진 나라, 그리고 ‘민주주의의 전초기지’로 우뚝 선 나라가 지금 중국이 추진하는 ‘경제적 동북공정’의 쓰나미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2003년 몽골을 방문해 3억 달러의 저리 차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몽골은 ‘단돈 1센트’도 받지 않았다. 지난달엔 중국의 우이 부총리가 몽골의 그런 ‘뻣뻣함’에 짜증을 내며 다시 2억 달러를 제의했지만 역시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갔다.

몽골 정부의 대답은 간명하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기는 어렵다.” 경제적으로 종속되면 결국 정치도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몽골리안 형제’들의 꿋꿋함이 눈물겹다.

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독재국가로 출발했지만 몽골과 반대로 ‘폭정의 전초기지’를 생존 방식으로 고수해 온 북한이 지금 치르고 있는 대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 심지어 북한에서는 ‘경제적 동북공정’이 이미 완성됐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몽골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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