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운]주말엔 잘 쉬십니까

  • 입력 2005년 6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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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놀면 행복해질까. 아니다. 여유로운 시간은 행복의 조건이 되지만 여가시간이 늘어났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늘어난 여가시간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대안은 거의 없다. 국민이 스스로 알아서 잘 놀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국민도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다. 차 끌고 무작정 고속도로에 올라타거나 아이들 데리고 놀이공원에 몰려가는 것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재미가 없다. 매주 그 만만치 않은 여가비용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가히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주5일 근무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준비는 한마디로 간단히 요약된다. ‘아무 생각 없음.’

지난 세기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사회주의혁명의 시작은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에서 출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주도로 설립된 제1인터내셔널의 가장 중요한 의제도 ‘1일 8시간 노동’, 즉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결국 200∼300년에 걸친 서구 근대화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여가시간 증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압축적 산업화를 통해 불과 50여 년 만에 이 과정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열심히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200∼300년에 걸쳐 형성된 안정된 서구사회의 여가문화까지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일. 문화는 압축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은 여가문화에서 결정된다. 여가는 문화생산과 문화소비가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모두들 세상이 뒤집어지는 재미를 기대한다. 사는 게 재미없는 이 땅의 사내들은 밤마다 폭탄주로 자신의 위장을 뒤집는다.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으니 스스로 뒤집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의 여가문화에서 그 어떠한 경쟁력 있는 문화생산과 소비를 기대할 수 없다. 우선 휴식과 노동의 철학부터 바꿔야 한다.

유대인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노동의 철학이 타 민족과 확실하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동철학은 ‘열심히 일하라’가 아니다. ‘우선 잘 쉬어라’다.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 흩어져 있더라도 유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오죽하면 예수가 안식일에 환자를 고쳤다고 시비를 걸었을까. 안식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6년을 열심히 일했으면 1년은 쉬어야 한다. ‘안식년(sabbatical year)’이다. 안식년에는 땅의 경작을 쉬어야 했다. 자연도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안식년에 밭에서 나는 곡식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었다. 안식일, 안식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식년을 7번 한 다음 해, 즉 50년째는 ‘희년(禧年·year of jubilee)’이라 불렀다. 희년에는 경작을 쉴 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빚도 탕감해 주었다. 모든 법과 제도도 정지되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 것이다.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노동의 핵심을 쉬는 것에 두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다른 민족이 따라갈 수 없는 창의적인 민족이 된 것이다.

독일어로 여가는 ‘프라이차이트(Freizeit)’라고 한다. 자유시간이다. 이때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한 자유(free to)’를 뜻한다. 여가는 단지 노동에서 지친 몸을 회복하는 시간이 아니다. 아무런 의식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자기반성과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휴식이 아니다. 일과 휴식은 동전의 양면이다. 일의 반대말은 권태, 나태다.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일을 발견하고 삶의 재미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여가의 의미다. 한데 당신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가.

김정운 명지대교수 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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