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25>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6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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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런데 그날 저물 무렵이었다. 술과 고기로 잔치를 벌이고 군사들을 쉬게 하는데, 누가 한신의 군막을 찾아와 자랑스레 소리쳤다.

“광무군 이좌거(李左車)를 잡아왔습니다. 대장군께 감히 상(賞)을 청합니다.”

한신이 놀라 일어나며 그 사람을 불러들이게 하니, 정말로 부장(部將) 하나가 어떤 사람을 묶어왔다.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단아한 외모나 풍기는 기품만으로도 한신은 단번에 그 사람이 광무군 이좌거임을 알아보았다.

“네 광무군께 이 무슨 무례냐? 찾는 대로 정중히 모셔오라 했지 누가 이렇게 함부로 묶어 끌어오라 했느냐?”

한신이 무릎걸음으로 달려 나가 광무군 이좌거의 밧줄을 풀어주며, 그렇게 끌고 온 부장을 나무랐다. 그러자 천금(千金)의 상을 믿고 호기롭게 이좌거를 끌고 왔던 부장이 머쓱해서 한신을 바라보았다. 한신이 찡긋 눈짓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엄하게 그 부장을 꾸짖었다.

“소인(小人)이 소인인 까닭은 대인(大人)을 두려하고 공경할 줄 모르는 까닭이다. 너는 명색 한나라의 장수로서 천하의 현사(賢士)를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했으니, 그 허물이 적지 않은 터에 다시 무슨 상을 말하느냐? 어서 돌아가 네 밝지 못한 눈을 부끄러워하며 하회를 기다리라!”

그리고 광무군 이좌거를 끌어올려 동쪽을 향해 앉게 한 뒤 자신은 서쪽을 향해 앉아 절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이 한(韓)아무개는 선생을 일생의 스승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미거하다 저를 내치지 마시고 많은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 말에 이좌거가 펄쩍 뛰듯 몸을 일으켜 한신의 절을 피하며 말했다.

“예(禮)에 밝은 유가들의 말에도 ‘지나친 공손은 오히려 예에 어긋난다[과공비례]’하였습니다. 좌승상께서는 방금 몇 만 군사로 20만 대군을 무찌른 대장군이요, 저는 주군(主君)을 잘못 도와 패사(敗死)하게 만들었을 뿐더러, 끝내는 제 한 몸조차 지키지 못해 대장군에게 사로잡힌 패졸(敗卒)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찌 스승이란 말이 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의 깊은 지식과 밝은 헤아림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요, 저는 아둔하고 미련하면서도 대장군의 소임을 맡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이 없으면 대한(大漢) 동북쪽의 일은 그저 막막할 뿐입니다. 부디 어리석다 물리치지 마시고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한신이 그러면서 더욱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이좌거가 거듭 물러나며 그 절을 피했으나 한신은 이좌거를 놓아주지 않았다. 간곡히 빌고 권하는 것이 누가 보아도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침내 이좌거가 제자리에 앉아 공손하게 마주 절을 받으며 말했다.

“대장군의 뜻이 이토록 간절하시니 그럼 한 빈객(賓客)으로 막하(幕下)에 머물겠습니다. 앞 뒤가 꽉 막힌 소견이나 그래도 한 가닥 쓸모가 있어 대장군께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살려주신 은혜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여겨주십시오.”

그리고는 한 막빈(幕賓)으로 한신 곁에 남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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