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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4월 1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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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로맨티스트이자 쾌락주의자인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는 1725년 4월 2일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갓 열 살에 스승의 여동생과의 사랑을 시작으로 수녀와의 금지된 관계, 친딸에게 운명적인 구혼을 하는 광기에 이르기까지 카사노바는 40여 년간 욕망이 인도하는 대로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100여 명의 여인과 외줄타기 로맨스를 벌였다.
희대의 호색한이라는 후세의 평가와는 달리 그의 삶은 치열했다. 한 인간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든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희극배우인 아버지와 구두수선공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신도 부러워할 천재성으로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상류사회로 직행했다. 18세에 명문 바도바대에서 법학박사가 됐고 히브리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를 구사했으며 문학, 신학, 법학, 자연과학, 예능, 의학, 패션, 스포츠, 요리, 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200cm에 이르는 장대한 키에 직업도 외교관, 재무관, 저술가, 연극배우에서 도박꾼과 스파이까지 실로 다양했다. 황금구슬과 오렌지 껍질을 이용한 피임술의 대가였고 파리에서 복권사업을 처음 시도한 벤처 사업가이기도 했다.
이런 그도 한때는 신부(神父) 수업을 쌓았다. 또 군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려고도 했지만 추문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1756년 탈옥한 뒤 인생의 좌표를 바꿔 남은 생애를 방랑생활로 보내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모든 재능을 여인의 마음을 빼앗는 데 쏟아부었다. 카사노바의 삶을 연구하는 카사노비스트 김준목 씨는 저서인 ‘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에서 “그가 다른 바람둥이인 모차르트나 볼테르와 다른 점은 모든 연애사를 서술해 후세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로마와 파리에서의 화려했던 젊은 날을 뒤로 하고 프라하에서 도서관 사서로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카사노바. 73세에 누구 하나 지켜주는 이 없이 홀로 세상을 등진 그가 남긴 한마디는 지성으로 치장한 현대인의 가슴을 비수처럼 파고든다.
“즐겁게 보낸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권태로운 시간만이 낭비일 뿐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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