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쉼터서 집창촌으로 돌아가는 이유

  • 입력 2005년 3월 29일 19시 02분


28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선 때 아닌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이곳엔 전날 새벽 발생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속칭 ‘미아리 텍사스’ 집창촌 화재로 희생된 성매매 여성 5명 가운데 2명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다. 기자들은 장례식장에 온 유가족들에게서 성매매 여성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조심스럽게 이들을 만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여성단체 회원들이 유가족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 어렵사리 유가족과 대화를 나눌 때면 어김없이 회원들이 나타나 그들을 데려갔다.

화재가 난 당일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성매매 여성 생존자 3명은 곧바로 여성단체에 이끌려 한 쉼터로 향했다. 기자들이 항의하자 여성 단체 관계자는 “지금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과 업주의 횡포를 밝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쉼터에 따라갔다가 그날 밤 자진해 집창촌으로 돌아온 박모(32) 씨는 여성단체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쉼터에 머물고 있는 동료들의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박 씨는 28일 새벽 다시 쉼터를 찾았으나 면박만 당했다고 한다. 쉼터 측은 “만약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업주가 시킨 것으로 알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여성단체가 성매매 여성을 데려가고 또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이 유가족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나 ‘사회적 약자’로 보고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실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성매매 여성들은 지난달부터 다시 집창촌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 성매매 여성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쉼터나 자활센터가 아니라 돈”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성매매 여성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피해자’라는 이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보다는 이들이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여성 단체들이 진정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보호하려면 이들이 집창촌을 나와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좀 더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성매매 여성들이 다시는 집창촌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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