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0년 넬슨 만델라 출옥

  • 입력 2005년 2월 10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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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11일 넬슨 만델라가 출옥했다. 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은 지 26년 만이었다. 그동안 그는 어머니 아들 장손녀가 병으로, 사고로, 폭탄테러로 사망했지만 바깥소식으로만 전해 들어야 했다. 그는 출소 이듬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에 취임했고 2년 뒤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4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무려 342년 동안 이어져 온 인종갈등이 ‘무혈’로 해소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만델라가 일국의 대통령을 뛰어 넘어 현대사의 걸출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정치=이전투구’이기 십상인 현실에서 ‘상생’과 ‘공존’의 정치력으로 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인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흑인에게 주는 제로섬 정치가 아니라 흑백이 다함께 잘 사는 윈윈의 정치를 택했다. 그리하여, 그는 흑인들에게는 진정한 지도자였고 백인들에게는 피의 보복을 막아 준 구세주였다.

그는 혁명을 할 때는 신념의 정치인이었지만 집권 후에는 실용주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나랏돈을 풀어 빈곤을 해결해 달라는 흑인들의 요구에 ‘성장이 돼야 분배가 보장된다’며 남아공의 경제를 오랜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서 구했다.

과거사 규명도 만델라 방식으로 이뤄졌다. 취임 2년 후에야 발족시킨 남아공의 과거사 규명기구인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용서’라는 대원칙을 고수했다. 흑인 피해자 가족들은 백인들로부터 당한 살인, 폭력, 납치, 구금을 통곡으로 증언했지만 한결같이 “그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해 온 ‘용서’의 정치가 민중의 가슴 속으로 퍼져 싹을 틔운 것이다. 참다운 정치란, 민중의 한을 이렇게 어루만지는 것임을 만델라는 증명했다.

‘적과 화평을 이루려면 적과 함께 일해야 한다. 그러면 적은 당신의 동반자가 된다.’

만델라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 말은 정치인은 개인의 자존심보다 국가나 사회의 이익을 우선하라는 말로 읽힌다.

스물넷 연하의 신부와 재혼하고 퇴임 후에는 수감 중에 그렸던 그림을 전시하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던 만델라는 지난달, 하나 남은 아들인 장남이 에이즈로 죽었다고 고백해 다시 화제를 모았다. 그의 고백은 에이즈 사망이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는 남아공에서 지도층 인사가 나서 ‘에이즈는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려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환기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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