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43>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4년 12월 27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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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 유방이 있는 중군(中軍)을 둘러싸고 초한(楚漢) 양군 사이에 피투성이 난전이 벌어졌다. 워낙 한신의 안배가 치밀하여서인지 패왕이 이끈 초나라의 정병과 맹장들이 거세게 몰아붙여도 한군은 제법 잘 버텨냈다. 거기다가 언제든 중군이 위급하면 달려와 한왕을 구하기로 되어 있는 유군(遊軍)과 몇 갈래 제후군이 따로 있어 한신도 한동안은 싸움이 뜻대로 되어간다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오던 양군의 균형을 깨는 일이 생겼다. 동쪽으로부터 몇 갈래의 초군(楚軍)이 달려와 한군 진채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범증과 계포가 먼저 갈라 보낸 원병(援兵)이었다.

소공(蘇公) 각(角)과 대사마 조구(曺咎), 위나라 장수로 있다가 패왕 밑에 들게 된 옹치(雍齒)가 각기 1만 군사를 이끌고 이제는 지키는 군사도 별로 없는 한군 진문 안으로 치고 들었다. 그들 3만은 패왕이 지나가고서야 겨우 대오를 수습한 한왕(韓王) 신(信)과 부관(傅寬)이 이끄는 한나라 좌군(左軍)을 가볍게 돌파해버렸다. 그리고 진채 안쪽에서 아직도 겁에 질려 어지럽게 몰려다니는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의 우군(右軍)을 무서운 기세로 덮쳤다.

불행히도 그 우군에는 팽성 싸움에서 얼이 빠지고 곡수(穀水)와 사수(泗水)가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빠져나온 제후군 병사들이 많이 있었다. 패왕이 지나갈 때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들은 새로 나타난 초나라 원병을 보자 그대로 며칠 전의 악몽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아예 창칼도 내던지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겁내지 말라! 대장군과 전군(前軍)이 너희를 도우러 왔다.”

나름으로는 포위망을 죈답시고 군사들을 몰아대던 한신이 그렇게 외치며 눈이 뒤집혀 달아나는 제후군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외침에 제후군이 진정되기는커녕 그들이 미쳐 날뛰며 드러낸 공포는 오히려 무서운 전염병처럼 한군에게로 번져갔다. 한군도 팽성에서 험한 꼴을 본 차례대로 슬그머니 등을 돌려 제후군 병사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진문 쪽의 한군은 머릿수만 많았지 서로 어지럽게 뒤엉겨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초나라 원병은 그런 한군의 한가운데를 쉽게 뚫고 이내 한군 중군을 들이치고 있는 패왕과 합세했다. 한신이 어렵게 군사 약간을 수습해 그들 뒤를 따랐으나 이미 그들 초나라 군사에게 그리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한군은 듣거라! 우리 서초(西楚) 본진 10만이 다시 이르렀다. 어서 항복하여 목숨을 건지라.” “한왕 유방은 무얼 하느냐? 어서 항복하여 가여운 장졸들이라도 살려라!”

원병이 이르자 더욱 기운이 치솟은 초나라 군사들이 저마다 그렇게 외쳐대며 한군을 들이쳤다. 그러잖아도 맹장들이 모두 흩어져 있어 겨우 형세를 유지해 오던 한군이었다. 놀란 눈에는 엄청나게만 보이는 원병과 함께 다시 한 무리 초나라 맹장들이 덮쳐 오니, 머릿수만 믿고 버텨오던 기세가 일시에 무너지며 저마다 겪은 며칠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거기다가 그 무슨 요술일까, 싸움에 밀린다 싶자 자신들의 퇴로가 강물로 막혀 있다는 게 벼락 치듯 한군의 머리에 일제히 떠올랐다. 어제 하루 부근 나루를 뒤지고 수수(휴水)가의 지세를 살폈지만, 우리 대군을 실어 나를만한 배도 모으지 못했고, 배 없이 물을 건널 여울목도 찾지 못했다더라….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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