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과거사’에 발목잡힌 국회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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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철우(李哲禹) 의원의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으로 발화된 사상 공방의 불길이 이제 여야 간 ‘과거사 캐기’로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 의원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 의원이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을 부인하는 데 대해 “‘위장 변명’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은 심 의원을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에 비유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심 의원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동료들을 배신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했다는 주장이었다.

양측의 공방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 의원이 관련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뿐 아니라 1960, 70년대 남민전, 인혁당 사건 등의 ‘고문 및 용공 조작’을 파헤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반미청년회 사건과 서울대생 민간인 폭행 사건 등의 수사 및 재판 기록을 입수해 사상 검증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회가 끝없는 정쟁으로 내년도 예산안과 산적한 민생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지만 여야는 비생산적인 과거사 논쟁에서 어떻게 이길까에만 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정리하고 국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이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 먼저 명쾌하게 해명되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한때 주사파였던 최홍재(崔洪在) 씨가 최근 이 의원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이 의원이 가입했던 ‘민족해방애국전선’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했던 게 분명하다”며 과거와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촉구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 의원은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촛불기도회에서 “과거에 편향되고 잘못된 길을 가기도 했다”고 말했을 뿐,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선 설득력 있는 해명을 하지 않았다.

여야가 과거사를 갖고 공방을 벌이기에 앞서 상황을 지켜보며 걱정과 우려를 금치 못하는 국민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명건 정치부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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