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옥동석]국회 예산심의 이대론 안된다

  • 입력 2004년 11월 29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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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현재 2005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17개 상임위는 정부예산안을 소관별로 심사하여 그 결과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로 보낸다. 예결위는 정부안, 상임위 의견, 각 정당의 의견을 종합하여 예산안을 정하고 이를 본회의로 회부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국회 상임위들은 예산을 3조원가량 증액했고, 또 예결위도 추가 증액을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지역구 챙기기’ 마구잡이 증액▼

국회가 사업을 추가하여 정부예산안을 증액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가. 국회에서 추가하는 사업은 시급성과 타당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행정부의 기획예산처는 국가예산의 총량 규모, 분야별 배분, 사업 우선순위, 사업 추진체계 등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부인 국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업을 추가하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다.

국회에서 추가되는 사업들은 대개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업부처가 기획예산처를 설득하지 못한 사업을 국회를 통해 추가한다. 둘째, 정부예산안에서 전혀 검토되지 않은 사업을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 차원에서 추가한다. 셋째, 예산편성의 근거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예산안부터 먼저’ 편성해 놓는다.

왜 많은 국회의원들은 예산에 대한 책임성이 부족한가. 존경받는 유능한 성직자, 교수, 공무원, 변호사, 전문가들이 왜 국회의원만 되면 예산심의에서 무책임해지는가. 가장 큰 이유는 국회가 예산에 대해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권한이 없으면 책임도 없으며, 책임이 없으면 ‘좋은 게 좋다’식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에게 나라살림에 대한 책임감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국회도 행정부처럼 국가예산의 총량 규모, 분야별 배분, 사업 우선순위 등을 고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예결위는 정부와 협의하여 세입 세출 총량 규모를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한다. 둘째, 예결위는 정부예산안을 중심으로 분야별 예산 배분을 결정하고 상임위별 예산 규모를 산정해야 한다. 셋째, 각 상임위는 주어진 예산 한도 내에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한다. 넷째, 예결위는 상임위의 의견을 취합 조정하여 예산을 확정해야 한다. 이 네 가지 절차는 선진국 의회에서 이미 오래전에 확립된 것이다.

국회의원은 그뿐만 아니라 사업 추진체계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서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예산서는 예산과목의 명칭과 금액만 열거하고 있다. 예산의 집행방법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전권을 위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부는 어떠한 방법과 내용으로 예산을 집행했건 국회와 국민에 대해 아무런 책임(accountability)도 지지 않는다.

유사한 중복사업, 충분한 기획이 없는 사업, 정치적 선심사업, 성과 없는 낭비사업,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사업, 사업 내용의 무분별한 변경, 사업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예산 집행 등을 국회가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의 입법과목별로 그 용도와 목적, 내용, 제약, 권한과 책임 등이 법률용어로 기술되어야 한다. 이를 지출법률주의라고 하는데 선진국 의회는 이미 수백년 전에 이 제도를 확립해 놓고 있다.

▼국회책임제 도입 낭비 막아야▼

국회 예산심의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선택한 국회의원들이 원래 무책임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무책임한 예산 결정이 오히려 지역구 관리와 득표에 도움이 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무책임한 결정을 하면 득표에 해가 되도록, 예산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도록 한다면 우리의 세금은 더욱 가치있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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