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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6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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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존 쿠시(64)의 장편소설이다.
쿠시는 영국 호주 등 영연방에서 매년 발표된 소설 가운데 그 해 최고작품에 주어지는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쿠시에게 이 상을 처음 안겨준 작품이 1983년에 나온 이 작품이다.
남아공 백인 독재정권의 억압과 이로 인해 내란에 처한 케이프타운을 떠나 풀 향기 감도는 어머니의 출생지 프린스 앨버트로 향하는 외로운 주인공 마이클 K의 여로를 다룬 소설이다. 쿠시는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카프카의 대표작인 ‘성(城)’과 ‘심판’에 나오는 주요 인물은 그냥 ‘K’ 라는 익명에 가까운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번 작품의 ‘마이클 K’는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입술이 비뚤어진 채 태어나는 바람에 장애인학교 등을 돌며 어머니에게서도 외면 받는 쓸쓸한 성장기를 보낸다. 어머니는 어느 날 손발이 붓고 호흡마저 힘든 노환을 맞게 되는데, 아들에게 ‘시골로 같이 내려가자’는 편지를 보낸다. 마이클 K는 낡은 바퀴살 같은 재료들을 두드려 맞춰 어머니를 태울 수레를 만들고, 통행허가증도 없이 무모하고 고단한 길을 떠난다.
그 여로는 남아공 판 ‘오디세이아’ 같다.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무례하고 험악한 군인과 경찰, 게릴라들. 마이클 K는 병원과 수용소를 거치며 돈과 음식, 일자리까지 잠시 얻지만 사람들에게서 하인이나 노예, 포로나 부랑자 취급을 받는다. 나중에는 어머니마저 숨을 거둬 그가 여로에 나선 목적마저 사라지고 결국 혼자 남게 된다.
원래 직업이 정원사였던 그는 이 여로의 끝에 총성도 비명도 없이 무릉도원처럼 고요한 정원이 있을 거라고 문득문득 기대해본다. 과연 그는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쿠시는 흑백차별 정책이 극성을 부리던 남아공 백인 독재정권의 그늘을 꼼꼼하게 그려낸 작가로 불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그 시절의 정황이 단지 밑그림에 그칠 뿐이다. 쿠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운명의 굴곡 위를 걷고 또 걸어 안식의 땅으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소박한 의지다.
감상적인 어휘들이 전혀 쓰이지 않았지만,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도 따스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쓸쓸한 인내심이 가슴을 친다. 인물들의 과거사(史)와 앞날에 닥칠 일들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한 작가의 섬세하고도 능란한 손놀림이 드러나는 역작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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