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영용/‘돌팔이 지식’이 낳은 부동산정책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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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경제 상황을 인식한 탓인지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투기지역과 주택거래신고지역을 축소하고 부동산 거래세 부담을 일부 낮추는 방안을 검토키로 하는 등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설 듯한 태세다. 부동산 보유세 및 취득·등록세 인상, 평형 규모에 따른 원가연동제와 채권입찰제, 종합부동산세 등 ‘억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일부 수정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서민 주거안정을 표방했던 현 정부의 정책기조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 죽이기’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모두 폐기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동안 부동산 정책은 그 구체적인 시장성과를 고찰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아파트 보유세를 높이거나 거래신고제를 통해 취득·등록세 등 거래세를 인상하면 가격은 하락한다. 그리고 그 아파트 가격 하락이 의미가 있으려면 사람들의 주거비용 하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세금을 수단으로 아파트값을 떨어뜨리는 정책은 주거비용은 그대로 둔 채 자산가치만 하락시킨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의미 없는 것이다. 원가연동제나 주택채권입찰제는 건축업자가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낮게 규제하는 것이나, 이는 아파트 공급량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신규 아파트 분양을 둘러싼 비리만 양산한다.

실제 결과가 그렇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그 기능을 멈추고 내수 침체는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 스스로가 몇 달도 안돼 부동산 경기 부양을 거론하겠는가. 결국 지금까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논의의 대상도 못되는 ‘이상한’ 것들이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새로 거론되는 정책 방향도 우왕좌왕이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낮춰 건설경기를 부양해 보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인 듯하나, 이 역시 무엇이 목표이고 무엇이 수단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부동산 매입 후 내야 하는 보유세는 높은데 거래세를 낮춘다고 하여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그러한 거래의 성격은 무엇인가. 내 집에서 오래 살겠다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사고팔기를 자주 하는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낸다면, 그 세금 정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부가 그토록 근절하기를 원했던 투기를 스스로 조장하겠다는 것은 아닌가.

잘못된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정부만이 아니다.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버젓이 여당의 ‘공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이한 현상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게다가 이제는 주택도 공공재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아졌으니 한국에는 제대로 된 경제원론 책도 한 권 없는가.

오늘의 경제위기는 다름 아닌 지식의 위기에서 연유한다. 돌팔이 지식들이 언제까지 그 위세를 떨칠 것인지 걱정스럽다.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런 치기 어린 지식에 토대를 둔 민생 챙기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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