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도 이전 하자고 아무 말이나 하나

  • 입력 2004년 8월 5일 18시 46분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김안제 위원장이 외교통상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수도 이전 강연에서 한 발언은 적절치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아무리 공무원을 상대로 수도 이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자리였다고 하지만 황당한 가정을 전제로 한 비논리적 어법에 설득 당할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도시 및 지역계획 전공자로서 40년간 쌓아 온 학문적 업적과 사회적 기여에도 흠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만약 남북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평택쯤에서 휴전이 된다면 인구는 5할, 국력은 7할 이상이 빠져나가게 된다”고 한 것은 군사전략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이제 6·25전쟁 때와 같은 피란 행렬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그 같은 발상은 자칫 우리 군의 핵심 안보전략인 수도권 사수(死守)에 대한 적의 오판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유사시 안보를 목적으로 한 수도 이전이라면 아예 제주도로 가야 옳다.

“서울 경기가 잘살아서 지방에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 위대한 수도 사람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느라 돼지도 기르지 못하게 하는데 수도권 사람들은 보조도 안 해주고 있다”고 한 것은 현 정권의 고질적인 편 가르기 수법을 보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수도 이전의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수도권 주민들을 여타 지역의 ‘공동의 적’으로 만들더라도 괜찮다는 것이 아닌가. 선진국 어디를 가든 대도시 상류 하천의 주민들은 오·폐수 배출을 엄격히 규제받고 있다. 충분치는 않지만 수도권 주민들은 1999년부터 t당 120원씩, 매년 2600억원 정도를 부담해 상수원 지역의 주민 지원 사업과 수질 개선을 지원해 왔다.

“서울대도 함께 내려가자는 주장이 있는데 독종들이 많아 말을 잘 안 들을 것”이라고 한 언급은 30년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해 온 그로서는 특히 부적절한 언사다. 서울대의 구성원을 ‘독종’에 비유한 발언의 품격은 낯 뜨거울 정도다.

우리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도 이전은 결코 ‘지배 계급의 교체를 위한 천도’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신중 및 반대론 또한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퇴진운동’이거나 ‘서울 한복판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권의 ‘국정 모니터’ 조사 결과에도 ‘일정대로 추진 불가능’이 74.6%, ‘이전 비용에 대한 정부 발표 불신’이 82.9%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때마침 야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수도 이전 계획의 문제점에 대한 11개항의 공개질의와 함께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결정을 내릴 때까지 관련 행정절차를 잠정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거듭 ‘악수(惡手)’를 두느니 한 호흡 고르며 냉정 침착하게 현실과 여론을 헤아려 보는 것이 국정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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