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7월 9일 19시 5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지금의 미국을 보다 포괄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다. 세계체제론은 국가 단위의 좁은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관점이다. 500년 동안 지탱해 온 자본주의 체제의 맥락 속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태도는 장기적이고 국제적인 맥락에서 미국의 현상을 이해하게 한다. 예컨대 9·11사건의 독특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그 사건이 간직하고 있는 심층적 변화의 징후를 못 보게 된다.
이 책의 두 번째 미덕은 현재의 세계체제가 우리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이다. 지금은 체제의 과도기로서 앞으로 더 나아질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이런 시점에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이 책은 변화의 잠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여러 차원의 전략을 제시한다. 장기적 목표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기본 가치를 모두 구현하는 일이다. 중기적 전략은 이윤추구 성향을 극복하고, 탈상품화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단기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미덕은 지구화, 이슬람의 정치세력화, 인종주의, 민주주의, 지식인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가 일관된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젠더처럼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의 영역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책은 날로 늘고 있다. 예컨대 마이클 무어, 놈 촘스키 등의 책은 부시의 미국을 조롱하고, 그 추악함을 효과적으로 고발했다. 이런 고발과 폭로는 당장의 대치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월러스틴의 책이 갖고 있는 심층적이고 장기적인 관점, 미래의 희망을 위한 다차원적 전략의 제시, 그리고 광범위한 주제는 다른 책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미덕이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