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근/비정규직 대책 좀더 멀리 보자

  • 입력 2004년 3월 29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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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 10만명을 정규직화하겠다는 정부 일각의 방침은 여러 가지로 이해가 안 간다. 정부 조직의 비대화와 예산 뒷받침도 문제지만, 춘투(春鬪)를 앞두고 비정규직 문제가 노사간의 최대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앞서가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 정부가 성의를 보였으니 기업도 협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노동계의 주문이 이어질 것은 뻔한 노릇이다. 결국 노조의 입장만 강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10만 비정규직화’노조 기대만 높여 ▼

비정규직의 처우는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따지기에 앞서 취업이냐 실업이냐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그래도 비정규직이 실업보다 덜 고통스러우며, 역설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고용이 유지된 것이다.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면서 동시에 실업자를 줄일 수 있는 비법은 없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 비율이 과다하게 높은 이유가 기업이 인건비 절약을 위해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늘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비율 자체를 규제하거나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 올려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유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들은 기업을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보고 있다. 혹시 아파트 분양가 논쟁에서처럼 비용에다 적정이윤을 더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때 ‘계속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다. 이때 경쟁력은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처럼 가격은 비용이 아닌, 시장에서 소비자와 경쟁기업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지불 가능한 임금총액은 기업의 현금흐름으로부터 역산(逆算)될 수밖에 없다. 최근 비정규직의 확산과 임금 격차는 임금총액이 거대노조에 의해 보호받는 노동자, 즉 정규직 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상당부분은 정규직의 과보호와 경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노조의 양보가 그 첫 단추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 4개 자동차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회사별로 순이익의 5%를 출연해 기금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노조의 기득권만은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익의 5%는 주주의 몫이다. 정부도 법인세율 만큼 세수결손이 불가피하다. 결국 주주와 정부가 부담해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출연 비율이 높아지면 투자자는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그 기업을 처벌한다. 투자자로부터 외면 받는 기업은 사라지게 된다.

‘10만 정규직화’는 당장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는 데만 급급해 노조의 기대수준을 높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안정이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정부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강박관념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거시적 안목과 친시장적 발상이 필요하다.

▼기업 망하면 근로자도 설땅 없어 ▼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협약만 해도 그렇다. 조합주의 전통이 체화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사회협약은 노동시장의 ‘정치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정부가 중재하고 노사가 합의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용은 ‘파생수요’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의 총화로서의 사후적 개념이다. 시장경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고용촉진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설 ‘운신의 폭’은 넓지 못하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춰주면 된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실업문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 활력 제고로 풀어야 한다. 실업대책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에, 정치화를 배제하고 정책순리를 좇는 긴 호흡의 정책사고가 요구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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