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민주당의 ‘원칙과 변칙’

  • 입력 2004년 3월 5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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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질서 수호는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원과 국회의 신성한 소명이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대표는 5일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조 대표는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노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법 위반 판정을 받고도 ‘법치주의 무시’ 행보를 계속한다면 탄핵을 발의할 수밖에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평소 ‘원칙’과 ‘법치’를 강조해 온 조 대표의 준엄한 한마디에 배석했던 상임중앙위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노 대통령의 노골적인 총선 관련 발언과 선관위 결정마저 무시하는 듯한 청와대의 고압적인 태도가 민주당의 탄핵 드라이브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곗바늘을 조금 앞으로 돌려 2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되돌아보면 혹시 조 대표의 ‘원칙’이 남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금할 수 없다.

당시 민주당은 여야 원내총무간의 기존 합의를 뒤엎고 당 소속 의원들조차 내용을 모르는 ‘전북 완주-임실 선거구 생존안’을 표결 직전 불쑥 제출했다. 결국 이로 인해 선거 관련법의 합의안 처리가 무산됨으로써 이미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이 난 현행 선거구의 방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이 같은 파행의 원인을 제공하고서도 민주당측이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는 점이다.

선거법 처리가 무산됨에 따라 발이 묶인 정치신인들은 명함 한 장도 합법적으로 돌리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이후 연일 열린 공식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는커녕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선거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선관위 결정에 토를 다는 청와대를 성토하는 데는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탄핵 공세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잘못부터 뼈아프게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의 공세가 ‘원칙’과 ‘법치’에 바탕을 둔 것인 만큼 더더욱 그런 자세가 아쉽다.

박성원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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