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발로 차주고…' 10대의 세계를 문학 속에 담다

  • 입력 2004년 2월 27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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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야 리사. 현재 와세다대 교육학과에 재학 중이다. 문학 소녀가 된 계기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책 통장'을 만들어 읽은 책만큼 기록해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황매

와타야 리사. 현재 와세다대 교육학과에 재학 중이다. 문학 소녀가 된 계기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책 통장'을 만들어 읽은 책만큼 기록해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황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159쪽 8500원 황매

‘10대의 세계를 어떻게 문학 속에 담아낼 것인가.’

올해 일본 아쿠타가와상(130회)을 수상한 와타야 리사는 최소한 이런 고민으로부터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지만 아직 만 열아홉 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교 2학년 때인 2001년 ‘인스톨’이라는 작품으로 ‘문예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올해에는 역대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기록했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은 현실에 발 내리지 못한 새파란 청춘들의 까닭 모를 소외감과 통과의례를 담은 성장소설이다. 고교생이 된 지 두 달 된 육상반 소녀 하츠, 올리짱이라는 패션모델에 거의 미친 ‘오타쿠(마니아)’ 소년 니니가와가 중심인물이다. 하츠는 단짝 키누요에게서 버림받은 후 ‘학교도 친구도 부모도 관심 밖인’ 급우 니니가와를 만난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두 사람이 만난 셈이다. 하츠가 니니가와의 책상 밑에 숨겨진 큰 상자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그들 나이 즈음의 내면 풍경이 잘 드러난다.

“크고 빨간 달리아가 프린트된 현란한 블라우스와 반지 같은 액세서리류도 있다. 상자 안의 세계는 굉장히 화려하지만 어딘가 꺼림칙하다.(…) ‘거기 있는 잡지엔 전부 올리짱이 실려 있어. (…) 그 밖의 옷 같은 건 애독자 사은품이랑 라디오 경품이고. 사인이 들어있는 손수건도 있어.’”

니니가와는 그 큰 상자에 갇힌 자기를 비춰주는 ‘별’ 올리짱을 직접 만나러 하츠와 함께 올리짱의 콘서트 장으로 향하지만 차가운 현실 앞에 ‘고양이처럼 등을 웅크리고’ 만다.

하츠의 내면은 ‘어서 크고픈 어떤 욕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줄곧 브래지어를 드러내고 있던 선배가 드디어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도 브래지어는 여전히 자기주장을 계속해 꽃 자수 부분이 비쳐 사각거린다. (…) 그녀의 체육복 가슴 부분도 (종이 아래에 댄 동전처럼) 연필로 긁으면 브래지어의 복잡다단한 꽃 자수가 드러날 것만 같다.’

하츠는 선배들이 장거리 코스의 끝부분에 서 있는 듯 멀게만 느껴지지만 어느 날 육상부 선생님의 별것 아닌 격려에 닫았던 마음이 풀어져 눈물이 쏟아질 듯하다.

작가는 데뷔작인 ‘인스톨’에선 스토리에, 이번에는 인물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실제 하츠와 니니가와의 캐릭터가 선명하다. 하지만 폭발력 있는 이야기의 분수령이 없다. ‘구릉이 완만한 골프 코스를 걸은 것 같다’는 게 독후감이라면 지나친 걸까.

작가는 올리짱을 ‘어른스러운 얼굴과 소녀의 미성숙한 몸이 이루는 언밸런스가 반인반수(半人半獸)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 이는 하츠와 니니가와의 내면세계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작품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의 문체를 주목해서 읽을 경우 이 같은 면모는 두드러진다.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듯하면서도, 복문으로 얽혀든 기성의 문장을 답습하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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