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07…아메아메 후레후레 (6)

  • 입력 2004년 2월 22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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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저물었는데 한낮의 태양이 아직도 머리 위에 눌러 붙어 있는 것 같다. 앉아만 있는데도 고문의 고통이 되살아나고, 트럭이 덜컹 흔들릴 때마다 온 몸에 아픔이 점화된다. 산간에는 볼품없는 너와집이 바람에 날려 한 데 모인 쓰레기들처럼 처마를 맞대고 있고, 집집의 굴뚝에서는 저녁을 준비하는 연기가 하늘거린다. 산에서 불어오는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고통과 피로와 비애와 불안과 분노와 공포로 얼룩진 얼굴을 쓰다듬는다. 누구의 입에선가 흥얼흥얼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무슨 노래인지 금방 알고는, 운전석에는 안 들려, 하고 눈으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코로만 인민항쟁가를 불렀다.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무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

그 밑에 전사를 맹세한 깃발

더운 피 흘리며 말하던 동무

쟁쟁히 가슴 속 울려 온다

동무야 잘 가거라 원한의 길을

복수의 끊는 피 용솟음친다

백색 테러에 쓰러진 동무

원수를 찾아서 떨리는 총칼

조국의 자유를 팔려는 원수

무찔러 나가자 인민항쟁가

그러나 우리의 노래는 오래 가지 않았다. 덜커덕 하고 타이어가 널을 뛸 때마다 소리가 줄어들어 각자의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더는 한숨 소리도 헛기침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청년이 꾸벅꾸벅 졸더니 우근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우근은 그 얼굴을 보았다. 코밑에 솜털이 나 있는 얼굴이 열대여섯 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 중학생인지도 모르겠다…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는데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다니… 이름 석 자도 모르는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이 죽는다… 아이고, 세상에… 나에 대해서는 몇 명쯤 알고 있는 것 같다. 트럭에 올라탈 때, 몇 명이 슬쩍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의 본명은 모르리라. 이춘식이란 이름은 유명하지만, 부산에서 이우근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초량상고 박운규와 막 민애청 간부로 선발된 김연태 정도다… 그러고 보니 요즘 김연태가 통 보이지 않았다… 그새 탈퇴를 했나?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코가 귀 바로 옆에서… 아이고 간지러워… 이름이 뭘까… 이름은 상상할 수 없다… 최소한 스물아홉 명 하나하나의 이름은 알고서, 아이고….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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