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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0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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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5년 내에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이번 발표는 계획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경제의 현실과 장기 추세를 보면 한국경제가 앞으로 5년간 연 5%가 넘는 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은 비현실적 가정이자 희망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정부가 만드는게 아니다 ▼
많은 경제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잠재경제성장률이 이미 4%대로 내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잠재성장률이란 불경기와 경기과열의 경계가 되는 성장률이다. 우리 경제의 능력을 감안할 때 물가 불안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고성장률인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연 4%대인 이 상황에서 앞으로 5년간 연평균 5%가 넘는 성장을 지속하겠다는 것은 잠재능력을 초과해서 과속성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부동산 투기와 물가불안을 초래할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번에 발표된 목표치에 집착한다면, 수년 내에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한 긴축정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과속성장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난제를 회피할 방안은 없을까.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이번 정부 발표에는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올릴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들이 사업하는 데 필요해서 사람을 더 쓰고자 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람 쓰기를 주저할까. 무엇보다 사업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사업이 잘 되도록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최선의 일자리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경기가 회복돼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 쓰는 값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값’이 비싸니 기업들은 투자를 해도 오히려 사람을 안 쓰기 위한 설비와 기술에 투자하게 된다. 기업투자가 늘어도 고용이 별로 늘지 않는 이유다. 또 사람을 한번 쓰면 좋든 싫든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채용을 꺼린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괴로운 일이지만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고용의 안정성과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래도 그 편이 지금 급증하고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보다는 낫다. 또 그렇게 해야 기업투자가 늘 때 고용도 함께 는다.
정부의 일자리 대책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없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실현가능성 있는 일자리 만들기 대책을 진지한 고민과 함께 내놓아야 한다. 일자리 창출에 전제가 되는 대책들은 한결 같이 괴로운 선택과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국민 세금으로 기업들에 고용보조금을 주는 것이 대책일 수 없다.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올릴 것인지, 기업투자와 경기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임금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지, 노동시장을 어떻게 유연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이 덜렁 발표된 이번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은 그렇기 때문에 정책이라기보다는 낙관적 가정을 전제로 한 일종의 전망치에 불과하다.
▼기업의 고용기피 원인 살펴야 ▼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임기 중 연 7%의 경제성장과 25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많은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마음이 앞서 현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참모가 써준 원고를 그대로 발표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운동을 할 때가 아니다. 정부정책을 선거공약 만들 듯이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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