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제도개혁은 없고…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8시 35분


“○○○ 회장이 곧 소환될 예정이다.”

“○○회사가 대선을 앞두고 ○○당에 ○○를 준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고 하더라.”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최근 재계에는 이런저런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또 연일 검찰발(發) 빅뉴스들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과연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이번 사태의 핵심인 ‘불법 정치자금 주고받기’ 관행을 끝낼 수 있을까.

기업 관계자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돈 먹는 하마’로 비유되는 현 정치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어느 기업이 누구에게 얼마를 제공했는지 모르게 돼 있는 지금의 정치자금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불법 정치자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노태우(盧泰愚)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청사로 불려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끄러운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인 개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이 2001, 2002년 미국 사회 전체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회계부정 사태에 대처한 사례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한때 매출 1000억달러를 기록했던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으로 시작된 회계부정 파문은 월드컴, 글로벌크로싱 등 다른 기업의 회계부정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미국 자본주의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물론 미국 법무부도 수사에 착수해 범법자들을 기소했다.

그러나 미국에선 정치권이 나섰다. 의회는 수십 차례의 청문회를 거쳐 ‘사반스-옥슬리법’을 제정했다. 회계법인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미비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킨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SK 비자금 사태가 터지면서 정치자금 제도 개혁에 대한 관심이 ‘한때’ 모아진 적이 있었다. 국회에선 이를 논의할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각 정당은 폭로와 비난전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 틀 짜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국회의원 정수 늘리기 등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오히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가 “정치자금 개선 방안을 논의해 보자”고 제안했으나 정치권은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입법권이 있는 정치권 대신 ‘칼’을 쥔 검찰이 정치개혁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반스-옥슬리법’은 이 법안을 주도한 의원 두 명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법안이다. 한국의 ‘사반스’와 ‘옥슬리’는 없는가 묻고 싶다.

공종식 경제부 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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