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정치권 ‘派兵 떠넘기기’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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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추가 파병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눈치 보기’가 계속되고 있다.

‘정신적 여당’을 자처하는 통합신당은 일요일인 19일 밤 의원총회에 이어 20일 오전 운영위에서도 열띤 논란을 벌였다. 그러나 정동채(鄭東采) 홍보기획단장이 발표한 결론은 “국회조사단 파견 후 정부 입장과 국민 여론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는 이런 어정쩡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데 대해 “명색이 여당으로서 정부측 구체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공론(公論)을 모아내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더라도 부담이 큰 게 현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미 파병 방침을 굳힌 정부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전통적인 여당의 역할이겠지만, 파병에 반대하는 소속 의원이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당의 지지기반인 진보세력이 파병반대 운동을 본격화하는 상황을 외면할 수만도 없다는 얘기였다.

한나라당은 통합신당의 당론과 정부의 파병안이 나온 뒤 당론을 결정하겠다는 방침만 며칠째 되풀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149석의 거대야당이 44석에 불과한 소수당의 눈치나 보고 있는 거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 지도위원 상임운영위원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 중이다”면서도 “과거 쓰라린 경험이 있는 이상 이번에는 신중히 조절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1차 파병안 처리(4월 2일) 당시 정부에 앞서 파병 찬성 입장을 정함으로써 파병 책임을 뒤집어썼던 잘못을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다수 의원들이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만큼 파병 과정에서의 밀실결정 및 눈치보기를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원내 제1당으로서 국론을 모으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소신론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왜 우리가 자청해서 짊어지려고 하느냐”는 현실론에 묻혀 버렸다.

물론 정치권이 이처럼 노무현 정부의 구체안 제시를 요구하며 차일피일 당론 결정을 미루게 된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여론 수렴에 앞장서기보다는 정부 고위 인사들이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한마디씩 하면서 혼선만 빚다가 유엔 결의안 채택 직후 전격적으로 파병 방침을 밝힌 정부의 졸속 처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국론을 수렴해 정부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줘야 할 책임은 정작 국회에 있지 않을까.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을 의식해 대통령에게 공을 떠넘기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모습은 어디로 보나 공당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박성원 정치부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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