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짜증나는 ‘신당 드라마’

  • 입력 2003년 8월 31일 18시 31분


신당 문제를 화제로 끄집어내자 한 민주당 원로급 정치인은 혀부터 끌끌 찼다. 언급하기조차 싫다는 표정을 짓던 그는 한마디해 달라는 재촉에 “무얼 그리 질질 끄는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달 28일 열린 민주당 당무회의는 입에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와 난장에서나 볼 법한 멱살잡이로 얼룩졌다. 현안이었던 전당대회 소집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9월 4일에 ‘마지막’ 당무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9월 4일에는 신당 문제의 가닥이 잡힐 것인가. 얽히고설킨 민주당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민주당 주류가 강온파로 갈려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강경파는 “민주당을 유지하자는 쪽이든 뭐든 입장을 밝히라”고 지도부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래서 강경파가 거사를 위한 ‘D-데이’를 9월 7일 전후로 잡았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물론 다수의 온건파는 “개별 행동을 해선 안 된다”며 여전히 ‘선도(先導) 탈당’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28일 당무회의가 난장판이 되자 자리를 빠져나온 한 중도파 당무위원은 “나갈 사람들이 먼저 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으로 나가라. 그러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정치적 주민등록(당적)’을 파 가지고 뒤따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만들기’에 공이 있어 주류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지역구가 호남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처지다. 민주당 내에는 이같이 지역구 사정에 따라 내년 총선에서 불거질 ‘DJ 변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선지 그는 “국고보조금 같은 문제에 신경이 쓰여 당내 투쟁을 계속하면 우리 당의 상처만 더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팔려 결단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진단인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정치 불개입’을 선언하면서 팔짱을 끼고 있는 것도 민주당 내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는 배경 중 하나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영환(金榮煥) 의원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세상은 급변하는데 참 콩알같이 작은 신당 문제로 서로 아옹다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무튼 재미있는 TV드라마도 자꾸 질질 끌면 시청자들이 짜증을 내는 법. 민주당이 4월 26일경부터 방영을 시작한 ‘신당 드라마’는 별로 재미도 없는데 4개월 넘게 질질 끌면 국민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런 차원에서 얼마 전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이 끄집어낸 ‘합의이혼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그 요체는 성격도 맞지 않고 지향하는 바도 다른데 억지로 붙어 살기보다는 갈라서는 게 모양이 더 좋다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은 ‘사랑과 정치에는 계산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현재의 득실 계산보다는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잘 읽어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의 정치사에는 작은 것을 좇다 오히려 큰 것을 잃고 만 선택을 한 예가 너무나 많다.

‘이혼 선진국’인 우리나라에 ‘(정당의) 이혼통계’가 하나 더 보태지는 것이 유쾌한 일은 정녕 아닐 터이다. 하지만 합의이혼이든 법정이혼이든, 그것도 아니면 부부싸움을 그만하고 함께 살든 민주당 신당문제가 정리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이다 북핵 문제다 해서 머리가 아픈 국민은 ‘신당 드라마’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1일부터는 고단한 민생을 챙겨야 하는 정기국회가 열린다. 그래서 더더욱 하루빨리 국민이 보기에 ‘콩알 같은 신당문제’를 정리해 줄 것을 민주당에 당부하고 싶다.

최영훈 정치부 차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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