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英-獨-佛 ‘제3의 길’

  • 입력 2003년 8월 15일 17시 41분


구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은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국가별로 역사적 배경과 정책적 의제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변주되고 있다. 왼쪽부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동아일보 자료사진
구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은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국가별로 역사적 배경과 정책적 의제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변주되고 있다. 왼쪽부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동아일보 자료사진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김수행 안삼환 정병기 홍태영 지음/440쪽 1만5000원 서울대출판부

‘제3의 길’은 90년대 후반 우리 사회를 풍미한 패러다임의 하나다. 원래 제3의 길은 서유럽 좌파 정당들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고자 제시한 대안으로서의 정치적 기획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중후반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이 각각 ‘급진 중도’ ‘신중도’ ‘쇄신 좌파’를 내걸면서 넓은 의미에서의 새로운 제3의 길이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제3의 길은 과거 제3의 길과는 사뭇 다르다. 이 제3의 길은 구(舊)사회민주주의(제1의 길)와 신자유주의(제2의 길)를 넘어서려는 기획이다. 새로운 제3의 길이 유명하게 된 데에는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의 사부(師父)로 알려진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공로가 크다. 왜냐면 기든스는 자신의 책 ‘제3의 길’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갱신을 내건 중도 좌파의 신노선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제3의 길은 나라에 따라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패러다임일까. 이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을 제시하는 책이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나왔다. 이 책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제3의 길을 영국 독일 프랑스 사례에 주목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제3의 길에 대한 논의가 다소 과도한 일반론의 수준에서 이뤄졌다면, 이 책은 나라별로 제3의 길이 갖는 역사적 배경과 정책적 의제들을 상세히 분석한다. 이런 사례 연구가 중요한 것은 동일한 제3의 길이라 하더라도 개별 국가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작지 않은 편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이 중간층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의 한 지류로 볼 수 있다면, 프랑스의 제3의 길은 전통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중간층을 강조하는 전략을 결합하려는 기획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영국, 독일, 프랑스 정부가 표방한 제3의 길이 결국 ‘현대적 좌파’의 국민정당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기획이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현대적 좌파’란 노동자계급이 당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보수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좌파를 뜻한다.

이런 저자들의 결론은 공감 가는 바 적지 않다. 오늘날 서유럽 정당은 좌우파 이념에 기반을 둔 계급적 정체성보다는 집권을 위해 전념하는 선거정당의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민주주의의 고전적 이상인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대해 제3의 길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은 불투명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제3의 길의 실체를 비교 분석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정책적 측면에서 서유럽 제3의 길이 직면한 고뇌 또한 간단한 것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고 정보화되는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현실이며, 그 중핵에는 다름 아닌 시장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고삐 풀린’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노동력을 절감하는 신기술이 계속 개발되는 상황 아래 완전고용은 여전히 유효한 프로그램인가.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그 내용이 서유럽의 현실인 동시에 우리의 현실임을 새삼 일깨워 주는 책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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