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희/정부 언론비판 속셈은

  • 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54분


‘레드 헤링(red herring)’의 현대적 의미는 훈제된 청어다. 그러나 18세기 유럽에서는 냄새가 지독한 이 생선을 사냥개를 훈련할 때 여우가 다니는 길에 놓아두어 개의 후각을 단련시키는 데 썼다고 한다. 한편으론 사냥감을 쫓던 개가 그 냄새를 맡고 나면 사냥감을 놓친다고 해서 도망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기도 했다. 논쟁에 휘말린 사람이 위기를 모면하는 수법 중 ‘레드 헤링 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엉뚱한 데로 상대방의 관심을 돌려 논점을 흐리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엉뚱한 허수아비를 하나 만들어 놓고 공격하게 한 뒤 그 틈을 타 도망가는 기법이다.

▼‘국정난맥’ 관심흐리기 수법 ▼

설마 누가 이런 얄팍한 수법을 쓸까 의아해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요즘 정부가 보여주는 일련의 태도는 ‘레드 헤링 기법’의 심증을 풍기고 있다. 양길승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문제를 놓고 청와대가 “후속 보도가 무서워서라면 경질하지 않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 그중 하나다. 언론보도와 청와대 직원 인사를 연결시킨 그 말을 들으면 마치 양 실장이 향응을 받은 것과 언론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향응을 받은 사실이 엄연한데, 그걸 보도한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격이다.

지난 주말 국정토론회에서 정부가 언론을 비판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레드 헤링 기법’의 심증이 짙다. 첫째는 그렇게 강도 높게 언론을 비판할 만한 뚜렷한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문제삼은 부천서 성 고문 사건의 허위보도 문제나 ‘개××’ 발언 보도는 명분치고는 너무 해묵었거나 지엽적인 사례들이다. 둘째는, 국정토론의 메뉴로 언론문제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인 출신 가운데 질 안 좋은 사람도 많다” “정책이 완료되기도 전에 비판기사가 나온다”는 것은 국정토론의 어젠다가 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다.

국정토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불리한 기사’ ‘비논리적 기사’ ‘매우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기사’ ‘나쁜 보도’들이었다. 현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통틀어 ‘오보’로 불릴 만한 이런 기사들이 나라를 망치는 주범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보는 특종을 하려는 과도한 의욕이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오보는 특종의 ‘못난 사촌’쯤 된다. 굳이 정부가 나서서 싸우지 않아도, 오보는 언론 스스로가 타파하려고 하는 숙적이다. 오보는 저널리즘이 생긴 이래 사라지지 않는 과제다. 워터게이트 보도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는 자신의 기사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best obtainable version of truth)”이라고 설명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 1보를 전한 통신 기자는 총성을 듣자마자 “세 발의 총성이 케네디가 타고 있는 차에서 울렸다”고 타전했다. 케네디가 죽었는지, 범인이 오스왈드인지, 미 중앙정보국(CIA)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다간 영영 기사를 쓰지 못한다. 기자가 진득하지 않다고 욕하는 것은 소(牛)에게 말(馬)이 아니라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이며 시카고 트리뷴 사장인 잭 풀러는 말했다.

▼誤報는 역사가 걸러낸다 ▼

이렇게 모인 진실의 파편들이 훗날 역사를 구성한다. 역사는 자체적인 에너지로 오보를 걸러내는 힘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대강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보는 언론의 숙명이고, 오보를 걸러내는 것은 역사이다. 정부가 나서서 오보를 퇴치한 예를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오보로 인해 하야한 대통령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의 오보는 지금과 같은 정부의 항생제 요법으로는 퇴치되기는커녕 내성(耐性)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구상 중인 각종 전문기관과 막대한 예산이 언론의 오보를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영양제가 필요한 선수에게 항생제를 투여하고, 연습이 필요한 선수에게 “횡포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 바람에 경기는 표류하고, 관중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경기는 아직 초반전인데…. 선수의 앞날이 걱정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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