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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1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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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하면 오래 된, 무거운, 겨울외투가 생각난다. 옷깃을 여미고 싶고, 그 안에 푹 잠기고 싶은. 그러나 요즘은 진지함이라든지 진정성 혹은 진실, 숭고함 같은 것들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떼의 젊은이들이 나와서 저희들끼리 찧고 까불 때, 왁자그르르 재미있다고 엎어지고 뒤집어질 때 예외 없이 긍정적인 가치들이 수난을 당하고 능멸에 조롱까지 당한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공공연히, 정정당당히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인류가 수만년간 아름답게 가꾸어온 가치들이 매도되는 것일까. 세상이 변했고, 감각이 달라졌고, 인터넷이 나왔고, 모두가 바빠졌다는 것을 안다. 의식주에 윤기가 자르르 흘러내리는 판에 무엇 하러 무겁고 골치 아픈 일에 신경 쓰겠는가. 그저 가볍게 웃고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면 되리라. 끝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더라도 곧 권태가 닥칠 테고 인생의 이러저러한 얼굴들이 그들을 급습할 것이다. 그들 자신도 이것을 모르지 않아, 진지한 것을 놀리는 이면에 두려움이 서려 있다. 성장기의 여러 여건으로 보통의 젊은이들은 묵직한 것을 더듬고 사고할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해서 나는 여기에 아주 마땅한, 좋은 티켓 하나를 소개한다.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이라는 책. 이것만 가지면 기막히게 근사한 명승지 여덟 곳에 저절로 가 닿게 된다.
이 책은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종교학자의 소중한 독서 체험록으로, 저자가 40년간 만나고 또 만나온 명작들과의 교유 기록이다. 어떤 책은 한 번 읽고 그만이지만 어떤 책은 평생을 두고 계속 다시 읽게 된다. 나중의 경우 읽은 사람한테 깊은 울림이 남는데, 이것이 곧 축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처음 읽어 좋았던 책, 두 번 읽어 다시 좋았던 책, 읽을수록 새삼 새 책을 읽는 듯 새로운 감동이 빚어지는 책을 고전이라고 저자 나름으로 이름하고, 되풀이해 읽으며 의미를 새겼붙였다. 거듭 읽은 책의 목록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 일연의 ‘삼국유사’, 허먼 멜빌의 ‘백경’, 셰익스피어의 ‘햄릿’,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루쉰의 ‘아Q정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여덟 권.
책의 어느 구석에도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따위의 권위적인 목소리는 없다. 오히려 이것들을 읽으면서 스스로도 늘 감동을 받거나 설득 당한 것은 아니라고, 당시의 자신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심지어 불만스럽기까지 한 부분들도 많았고 작품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위눌리거나 화를 낸 경험도 있었다고 세세히, 편편이 고백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저자의 놀라운 통찰이나 탁견들도 친근하고 부담 없이 다가온다. 또한 여덟 편의 독서체험기 뒤에 ‘나를 움직인 대목’들을 수록해 놓았는데 저자가 두고두고 밑줄을 그었던 부분으로, 그것만으로도 원작의 흥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갈수록 고전에서 멀어져 가는 요즈음, 본질적이고도 예리한 삶의 탐구장으로 들어가는 매력적인 독서 체험이 될 듯.
이청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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