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집권당 '실종'

  • 입력 2003년 6월 27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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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통령선거 직후부터 시작된 민주당 내 신당 창당 논의가 6개월이 넘도록 끝없는 미로(迷路) 속을 헤매고 있다.

27일 오전 신당추진파-민주당 사수파-중도파 협상 대표간에 열린 3자 회동도 ‘민주당 해체’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서로 입씨름만 벌이다 결국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오랜 대립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 보니, 민주당 사수파는 ‘통합신당’을 만들자는 신당추진파측의 한발 물러선 제안에도 “결국 신당 대열에 끌어들여 놓고는 인적 청산을 하겠다는 ‘암수’가 숨어 있다”며 노골적으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특정지역 정서에 힘 입어 “신당 창당을 하려면 나가서 하라”는 민주당 사수파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신당 창당 논의를 주도해온 강경 세력들은 “민주당에서 우리가 다수인데 왜 나가느냐”며 민주당 사수파를 ‘기득권 옹호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문제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본말(本末)이 전도된 듯한 신당 논의가 고스란이 민생(民生)에 대한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4조1700억원의 추경예산안이 제때에 처리되지 못해 시급한 경기회복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한국-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집권여당이 신당싸움으로 집권 첫해의 절반 가까이를 흘려보내는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신당추진파의 한 중진의원은 ”이제는 솔직히 왜 신당을 만들려는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국민 보기가 민망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더더욱 심각한 상황은 ‘국민 앞에 책임지는 개혁정당’이라는 신당의 취지와 달리, 민주당 신당추진파 일각에서 신당 창당 논의를 정치공학적인 시각에서만 보는 듯한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의 구호만 있지, 그 핵심인 ‘국민’은 실종된 것 같은 상황인 셈이다.

실제 일부 신당파 의원들은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흥행을 하기 위해서는 좀 진통을 겪다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쯤에 창당이 완료되는 게 오히려 낫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물론 뜻 맞는 정치인들끼리 신당을 만드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 권리다.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책략도 정치 현실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하지만 민생은 뒷전에 팽개친 듯 신당 논의에만 몰두하는 듯한 여권의 태도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부대끼는 국민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신당 추진이 됐든 당 사수가 됐든 이제는 ‘결단’을 내리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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