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달웅/‘大邱의 눈물’ 마르지 않았다

  • 입력 2003년 5월 27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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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째가 되었다. 대구시민들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또 하나의 불행한 과거지사로만 서서히 인식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 앞선다.

사건의 직접적 원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변 현실에 불만을 쌓아온 한 개인의 잘못된 판단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도록 사태를 악화시킨 사람들에 대한 도의적, 법적 책임 문제는 여전히 분명치 않은 상태다. 솔직히 지금 대구사회는 이 분명치 않은 문제를 둘러싸고 사분오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느새 ‘과거지사’로 잊혀지나 ▼

현대사회의 재앙은 그 발생 원인을 특정인에게 돌리기 힘들 정도로 단순치 않은 특징을 지닌다. 얽히고설킨 관행과 인습, 법규와 규정, 직책과 업무 가운데 어떤 것이 일탈하면 그에 연관된 것들이 하나하나, 그리고 서서히 파행적인 형태로 작용하다가 어느 순간 촉매적 활동에 의해 대형사고로 터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유기적 특성을 도외시하고 일부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것은 다수의 횡포일 수 있다. 이는 망각이라는 개별적 기제를 통해 제도적 결함을 감추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대구시민들이 합심 노력해야 할 일은, 이번 참사로부터 역사적 교훈과 시대적 과제를 밝혀내고 그 참사에 대한 공동의 승화된 기억을 갖기 위해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런 만큼 참사를 불러일으킨 ‘남 탓하는 코드’를 거두고, 지금부터는 물리적으로 단절된 지하철처럼 심리적으로 분열된 시민들을 다함께 잇는 ‘로드맵’을 설정하기 위해 대구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위험 도시의 오명을 씻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미래 건설이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지금까지 시 당국이나 정치인, 그리고 시민단체가 수습하겠다고 나선 일이 수습을 더 어렵게 해온 측면은 없었는지도 반성해볼 일이다. 사태 수습을 담당한 시 관계자는 좀 더 성의 있는 자세로 유가족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고, 유가족은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대구시가 해줄 수 있는 범위의 요구사항을 제시할 정도로 냉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다만 대책위원회의 활동에 바람이 있다면, 이(利)보다는 의(義)를 추구함으로써 고인이 된 이들의 원통한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추모공원 조성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생색내기식 접근을 하지 말고, 지역의 분열된 여론을 통합해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며 미비한 사회안전체제를 정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바닥 모르게 추락하는 대구의 민심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날개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은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들은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 다른 지방에 사는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대구시민 역시 행복은 먼 곳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행복을 누군가 가져다줄 것처럼 살아온 경향이 짙다. 특히 중앙에 기대어 일희일비를 계산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그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추모공원 조성 원만히 이뤄지길 ▼

요즘 세계는 지역간 경쟁이 가속화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구시민들은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뒤처지지 않을 비전과 발전 전략의 수립에 매진함으로써 이번 사고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어야 한다. 대구를 우리 국민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대구시민들의 새로운 자존심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진원지로, 그리고 참여정부 하에서 지방분권운동의 진원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대구시를 지역혁신 체제의 선봉 도시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구시민들의 시대적 과제다. 이 같은 지역혁신운동, 곧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의 새로운 애국애향운동을 전개하고 여기에 동참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라마지 않는다.

김달웅 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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