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지태/'당당한 검찰' 보고 싶다

  • 입력 2003년 5월 1일 18시 38분


사스 치료를 완료했다는 베트남의 성공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스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환자를 격리해 더 이상의 감염 가능성을 차단한 채 환자에 대한 집중 치료를 통해 치료를 완료한 것이다. 그러나 사스 치료에 실패한 중국의 사례는 정반대다. 사실을 은폐하느라 초기 진료체제 구축이나 외부 감염 차단에 실패했고, 이 때문에 불필요하게 많은 감염자들을 발생시켰다. 이제는 중국 전체가 사스 공포에 처해 있고, 엉뚱하게도 그 파급 효과는 우리나라에까지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종금 수사 ‘정치적 고려’ 우려 ▼

정치권의 사스 공포인 나라종금 사건에 대한 치료는 검찰의 몫이다. 초기에 검찰은 사건 자체를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사실들을 밝혀내고 치료에도 거의 성공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외부에 대한 감염을 두려워해 스스로 치료 체제를 왜곡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초기 치료에 실패해 국가 전체에 정치적 감염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예상할 수 없다. 나라종금 사건 수사를 시금석으로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심하게 싸운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친해진다고 한다. 정권 초기에 검찰과 정치권이 대립국면을 보일 때 느낀 생각은 검찰이 자존심을 회복해 원래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섰던 젊은 검사들의 의연한 모습은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기개라면 뭔가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시험무대는 언제나 예상보다 빨리 오는 법이다. 준비 없이도 사건은 벌어지며 각본 없이도 무대의 막은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나라종금 사건은 애당초 검찰이 정권 초기에 상실했던 자신감을 회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검찰이 사건 초기에 보여준 태도도 아무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밝히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가 의외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확인되면서 어느 순간 정치적 고려가 사건 전체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신문기사 저편에는 어느새 ‘꼬리 자른 도마뱀’이라는 자조적 비평기사도 등장하고 있다.

정치권에는 거의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파격적인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파격적인 행보들을 보노라면 국내외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가 운영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국가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이 얼마나 모험적인 일인지 새삼 느끼며 사는 요즈음이다.

그 중에서도 정권 초기에 검찰조직은 가장 먼저 개혁을 주문받은 조직이었다. 장관이 파격적인 인물로 임명되고 기수파괴 인사가 시행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수사 등 모든 면에서 자율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 주눅든 조직이 아니라 법의 집행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공정하고 엄격한 주재자로서 다시 태어날 것으로 기대되었다.

▼‘엄정-공정’ 스스로 세워야 ▼

TV를 통해 공개적으로 개혁을 최고통치권자로부터 주문받은 조직이기에 검찰은 이러한 주문에 맞게 정치권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검찰처럼 정치권이 가장 두려워하고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조직이 되어야 한다. 시스템에 의한 국가운영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에, 검찰은 법 집행의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감히 통제될 수 없는 공정한 조직이라는 국민적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코드에 맞는 검찰의 모습이 엄정한 법 집행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법 집행에 감정이 개입되거나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다면 이미 법 집행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으로 정치권에 당당한 검찰을 보고 싶은 필자의 마음은 영원한 꿈으로 남아야 하는가. 이런 꿈도 이루어지는 것인지, 오늘 아침 그것이 정말 궁금해진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