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준비된 감독의 ‘준비안된 우승 감격’

  • 입력 2003년 4월 20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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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정상에 오른 뒤 활짝 웃고 있는 전창진 감독. 초보감독이면서도 선수들의 팀워크를 이끌어내고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한 그의 리더십은 우승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다. 김미옥기자
TG 엑써스가 대구에서 동양 오리온스를 꺾고 프로농구 챔피언에 오른 13일.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던 TG 전창진 감독은 구단 관계자들과 숙소 옆 편의점에 들렀다. 라면으로 속을 풀기 위해서였다. 마침 물건을 사러온 중년 남자가 전 감독을 알아봤다.

“아이구, 감독님 아니신가요. 사인 좀 부탁합니다.” 사인을 받아든 그는 “제가 동양 골수팬이지만 우승감독을 만나 영광입니다”라며 극구 사양하는 전 감독에게 억지로 음료수 몇 병을 안겨주었다. 옆 사람에게 한 병 씩 돌리고 자신도 뚜껑을 따 한 모금 마신 전 감독. “이 음료수는 나에겐 정말 소중한 겁니다. 사회에 나와서 내 얼굴 때문에 받은 첫 선물이니까요.”

그렇다. 그처럼 굴곡 많은 농구인생을 살아온 이는 찾기 힘들다. 지금의 그는 웬만한 사람은 알아보는 유명인사. 프로농구 경기가 열린 지난 6개월 동안 100㎏에 육박하는 거구, 땀을 뻘뻘 흘리며 큰 제스처로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그는 선수 못지않은 인기인이 됐다. 정상에 오른 뒤엔 오전 6시부터 하루 종일 각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을 정도.

그러나 혼자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의 지난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려 15년 가까운 긴 세월이었다. “허,허”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고 다니던 그였지만 글쎄, 속까지 그랬을까.

○ 삼성 주무시절 ‘정보통’으로 통해

그에게 처음 위기가 찾아온 것은 84년. 고려대에서 슈팅가드로 잘 나가던 때였다. 상무와의 연습경기 도중 발목을 크게 다친 것. 이듬해 그는 삼성전자에 입단했지만 3년의 짧은 실업선수 기간중 2년을 투병생활에 바쳤다. 88년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선수단 주무. 돌이켜 보면 이 때가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

“선수로 뛰다가 선수 뒷바라지해야하는 일이 너무 자존심 상했습니다. 심부름은 물론 선수단 일정관리, 홍보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잖아요.”

전 감독은 주무시절 ‘정보통’으로 통했다. 구단 일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술자리가 따르기 마련. 그러나 전 감독은 술을 한잔도 못하는 체질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구상한 매력 포인트가 바로 이것. ‘전창진을 만나면 뭔가 건질 게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모든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각 구단마다 직접 취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열성 때문이었을까. 삼성전자는 그를 98∼99시즌 수비코치로 임명했다. 꼬이기만 하던 그의 농구인생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99년 4월 TG 전신인 나래 코치. 2002∼2003시즌을 앞두고는 정식감독을 맡았다.

“내가 뭐 한게 있나요. 무엇보다 선수들이 잘 해줬고 제이 험프리스 코치가 잘 도와준 덕분이지요.”

그는 팀이 우승하는데 자신은 아무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팀내 최고참인 허재가 후배들을 잘 이끌었고 작전도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인 험프리스 코치에게서 빌린 것이라는 얘기. 그렇다면 정말 전 감독은 아무 역할도 안했을까.

‘내가 저 사람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저 사람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전 감독은 주무 시절부터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감독이 된 뒤 지도 스타일도 이 좌우명대로였다. 슈터 데이비드 잭슨이 볼을 차며 불만을 표시하는 등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했을 때도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2시간이 넘도록 그를 달랬다. 개성 강한 허재가 별 탈 없이, 아니 오히려 앞장서 후배들을 이끌었던 것도 전 감독의 포용력 덕분이라는 것을 농구인들은 다 안다.

○ “선배 감독들 찾아다니며 배웠죠”

그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 ‘코트의 여우’로 불리는 김태환 LG 세이커스 감독, 최희암 모비스 감독 등을 찾아다니며 ‘수’를 배웠다.

“코치 경력이 짧으니 아무래도 수가 달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고…. 어깨 넘어 배우기도 하고,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참 지나니까 눈 앞이 트이는 것같더라구요.”

그가 LG와 동양을 차례로 꺾고 우승하자 사람들은 ‘초보감독’의 승리라고 놀라워했다. 하긴 백전노장인 LG 김감독, 동양 김진 감독과 비교할 때 전 감독은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그도 초보감독인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초보감독이라고 꼭 져야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감독으로서 최고의 목표는 우승. 전 감독은 그 꿈을 이뤘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상에 올랐으니 또 내리막이 오겠지요. 앞으로 기쁜 일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위기를 돌파해야지요. 그러면 또 좋은 일이 오지 않겠어요?” 겸손하다고 해야할까. 노련하다고 해야할까. 도무지 경력 1년짜리 감독이 하는 말 같지가 않다. 그는 더 이상 초보감독이 아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전창진 감독이 걸어온 길

▶84년 고려대 시절 발목부상 ▶85년 삼성전자 입단했지만 2년간 투병 ▶88년 삼성전자 주무 ▶98~99시즌 삼성전자 수비코치 ▶99년 나래 블루버드 코치 ▶2002년 삼보 엑써스 감독 대행 ▶2003년 TG 엑써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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