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언론의 생명은 자유다

  • 입력 2003년 4월 17일 18시 33분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와 언론 사이에 일정한 긴장관계가 필요하다고 피력한 바 있다.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국민에게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잘잘못을 파헤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환기시킴으로써 정부에 대한 통제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한때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정부와 언론이 유착되어 언론에 의한 정부의 통제가 제대로 행해지지 못했던 불행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언론 사이에 일정한 긴장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길들이기’하면 엄청난 파장 ▼

그러나 최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국회 발언에서 비롯된 정부와 언론 사이의 긴장관계는 정부에 대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을 위한 전제라는 생산적인 형태보다는 소모적인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장관이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들의 시장지배를 문제 삼으면서 정부가 대응할 의사를 내비쳤고 해당 언론사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시작된 이번 갈등은 자칫 정부와 언론의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닫게 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발단은 언론의 자유 내지 언론매체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며, 또 정부가 언론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관여 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관이 조심스럽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의 시각은 언론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조정을 통해 언론의 잘못된 점들을 바로잡는 것을 정부의 역할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정홍보처의 통합브리핑룸 설치 및 언론 보도내용의 5단계 분류 등으로 시작된 정부와 언론매체 사이의 시각차는 이번 일로 더욱 분명해진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언론매체들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은 정부만이 아니다. 상당수의 국민도 언론보도에 대해, 특히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들의 보도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론에 대해 정부가 광범위하게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언론에 대해 정부가 규제하고 관여함으로써 언론보도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마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생명은 자유다. 자유롭지 않은 언론은 이미 죽은 언론이며, 그 폐해는 이미 우리가 군사독재 시절을 통해 생생하게 경험한 바 있다. 정부는 언론매체의 독과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그에 대한 개입을 시사했다. 그러나 독과점의 폐해와 언론에 대한 정부 개입의 폐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인가.

물론 이 두 가지 문제가 양자택일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정부가 언론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론에 대한 개입을 일반 기업의 독과점 문제와 같은 차원에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언론매체의 독과점이 왜곡된 시장구조나 제도적인 진입장벽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바로잡는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점유율 자체만을 문제 삼는 것은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심각한 제한으로 연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매체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이를 통해 정부가 언론을 길들이려 한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국민 선택권 침해 말아야 ▼

새 정부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욕이 앞서서 모든 사항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야 하며 정부가 나서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새 정부는 스스로가 과거의 정부와는 다르다는, 보다 민주적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현명하게 잘 처리할 수 있다는 독선에 빠지지 말고, 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가운데 공정한 관리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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