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성동기/정부청사서 내쫓긴 '알권리'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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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기자 출신입니다. 취재 편의는 최대한 존중하겠습니다. 믿어 주세요.”

부산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은 지난달 19일 기자실 개편 방향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같이 ‘다짐’했다. 기자실을 모든 언론에 개방하고 브리핑제를 도입하겠지만 취재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홍보처는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사무실이 있는 국무총리실 교육인적자원부 통일부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의 공보관 회의를 소집해 정부중앙청사 본관에 있는 4개 부처 기자실을 모두 없애고 별관(외교통상부 청사) 4층에 통합브리핑룸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통보’했다. 홍보처는 대상 부처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도 전에 브리핑룸 도면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공보관은 “홍보처에서 본관에는 공간이 없다고 하는데 선택할 여지가 없지 않느냐”며 “그냥 듣고만 왔다”고 말했다. 일부 공보관은 본관에 4개 부처가 입주해 있는데 별관에 통합브리핑룸을 두면 브리핑하러 왔다 갔다 하는 데 불편하지 않으냐는 등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홍보처는 취재제한에 따른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업무시간 중 사무실 방문 취재를 불허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방문 취재 금지에 이어 기존의 기자실이 모두 폐쇄되면 정부중앙청사 본관은 자동적으로 기자 출입금지구역이 돼 또 다른 취재 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조차 “홍보처가 의견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고 너무 밀어붙인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고건(高建) 국무총리도 통합브리핑룸을 만들기 전에 계획을 보고하라며 홍보처의 업무 행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가 14일 홍보처장의 보고를 받을 예정인데 이는 총리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고 일을 추진한 데 따른 질책성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안대로 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고 총리는 당초 홍보처로부터 기자실 개편 계획을 보고받고 “기자실을 개편하더라도 취재에 불편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고 총리가 통합브리핑룸 설치 계획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자 홍보처에서는 뒤늦게 본관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정홍보처의 설치 목적은 말 그대로 국정홍보다. 올바른 국정홍보를 위해서는 통합브리핑룸 설치를 무리하게 강행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동기 정치부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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