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승자유혹'에 빠졌는가

  • 입력 2003년 3월 26일 19시 32분


코멘트
어느 정권에서든 비판 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비판 세력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등을 돌리고 떨어져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정권의 이미지가 결정된다는 집권 초, 지금 노무현 정부의 첫 한 달 모습이 그렇다.

통합을 외치며 대선에서 승리한 후 3개월여가 지났지만 개선이나 현상유지는커녕 악화되는 갈등 구도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새 정부는 이런 현상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새 정권의 집권 한 달을 맞는 한국 사회에는 지금 두 가지 분위기가 두드러져 있다. ‘해체분위기’와 ‘조롱분위기’다.

▼심상찮은 소외감 확산 ▼

우선 새 정부가 지난 한 달간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 있다면 개혁 도입 부분의 어수선함이다. 대표적인 것이 ‘파격’이란 수식어가 붙는 인사다. 새 인물을 앞세운다는 개혁 의도라지만 또 다른 측면도 엄연히 있다. 지금까지 체제를 지탱해 온 조직과 질서를 흔들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조직과 질서라 해서 일괄적으로 개혁의 대상이라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고 단세포적이다.

또 사람 바꿨다고 개혁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옛 사람, 옛 것이라고 단칼에 잘라 버리자는 식이라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파괴가 될 수 있다. 개혁을 한다면 먼저 어느 곳에, 왜 개혁을 해야만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수술을 한다면서 정밀한 준비없이 정권 쟁취로 흥분한 잣대만 들고 나섰으니 막상 현장에선 갈팡질팡하는 인상이다. 새 사람을 내세웠다고 하지만 무늬만 개혁이지 언동의 내용은 ‘아니올시다’가 벌써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더욱 ‘해체분위기’가 미만해 있고 그것은 바로 소외감으로 이어진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서 지금 저변에서 술렁대는 소외감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방치했다간 다음에 어떤 경천동지할 개혁으로도 한번 돌아선 소외된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해체’에서 비롯된 소외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좌절과 굴절의 지난날’을 언급하면서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했다. 여기서 새 집권세력은 과거를 그렇게 부인할 만큼 스스로를 ‘중시조(中始祖)’의 자격이 있다고 믿는지 묻고 싶다. 개혁의 참뜻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는 데 있다. 그리고 건설은 더 어렵다. 위정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경구가 ‘역사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단순화하고, 또 재단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함정의 순간이다.

▼무너뜨리고, 조롱하고 ▼

경계해야 할 것 중 또 하나가 고개를 드는 ‘조롱분위기’다. 어느 한 세력이 상대방을 조롱하고 폄훼할 수 있다는 것은 힘의 추(錘)가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조롱이 나올 정도라면 ‘안하무인’ 독선과 ‘무소불위’ 독단이 꽉 찼다는 증좌다.

‘1급 공무원과 로또복권’ ‘쓰레기통 속의 특종’같이 대단히 듣기 거북한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졌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건전한 사회에선 용인될 수 없는 병적 징후다. 더욱이 그런 말들이 새 정부 핵심 인사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집권세력의 우월감이나 적대감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의 문화혁명 기간 중 대륙을 망가뜨린 것이 바로 홍위병들의 사회 조롱 분위기였다는 사실을 집권층에 전해 주고 싶다. 사회의 건강한 심성이 파괴되고 왜곡됐을 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모두 잘 아는 것 아닌가.

요즘 자주 인용되는 집권세력 내의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끌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란 것도 이런 심리상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집권세력은 ‘우리가 승자인데 해내지 못할 것이 어디 있는가’란 스스로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만이 옳고 반대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이런 ‘소수심리’는 국정 운영에서 절대 금물이란 것이 지난날의 교훈이란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지금 현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자꾸 더 멀리 떨어져 가는 것도 이런 ‘소수심리’에 대한 반작용이다. 여기서 ‘국민 통합을 외친 정권이 맞나’ 하고 다시 묻고 싶다. 이렇게만 갈 것인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