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대통령이 왜 편드나

  • 입력 2003년 4월 9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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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처럼 통합에 대한 주문을 많이 받고 있는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다. 대선 승리 후 지금까지 언론을 비롯한 각계의 통합 주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나는 법인데 여전히 쏟아 붓듯 하니 그 연유가 무엇인가. 대통령 쪽에서 보면 ‘그게 그 소리’ 같겠지만 주문하는 쪽의 생각은 ‘그게 그것이 아니다’이다. 개혁과 통합을 내세우고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이제는 통합노력을 보여줄 만한데 그렇지 않고 되레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같아서는 갈등의 틈이 더 벌어지고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크다.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뿌리를 둔 나라 안의 다양한 목소리 중에서 대통령이 어느 한쪽 편을 든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더욱이 상대방이 있을 경우 입에 맞는 어느 한편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국정을 대단히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사회적 쟁점은 각기 그 뿌리가 있는 것이어서 쉽게 한쪽을 잘라낼 수 없는 법이다.

▼심각해지는 분파성 ▼

새 정부 핵심부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집권 두 달째의 정권환경을 찬찬히 둘러볼 필요가 있다. 지금 사회 분위기가 새 정권 출범이란 이름에 걸맞게 희망적인가. 국민적 역량은 모아지고 있는가. 함께 이루어 보자는 생산적 분위기는 일고 있는가. 지금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우리의 집권의욕이 충만한데 무슨 흠집 내려는 소리냐’고 하기 전에 민심추이를 다시 한번 살펴보라. 의욕이 충만하다면 그 열정을 먼저 민심파악에 쏟아주길 바란다. 기초공사가 허약할 때 쓰는 말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지금 새 정권을 둘러싼 환경은 분쟁적이고 소모적이고 소극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파적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부정적 상황의 진원지는 통합과는 거리가 한참 먼 분파성에 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노 대통령 스스로 ‘취임 후 최악의 날’이라고 토로한 국정연설 날 일어났다.

노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원고에 없는 KBS사장 선임 배경을 설명한 데 이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부연 설명했고, 이날 저녁엔 KBS의 노조 관계자 등 2명과 3개 언론 관련 시민단체 대표 등 5명을 청와대로 불러 저녁 자리를 같이하는 ‘파격’을 보였다. KBS 사장 인선 ‘개입’을 합리화하려다 보니 자꾸 말이 꼬였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의견 개진이 개입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 주재 ‘노사협의회’ 같은 인상을 준 청와대모임이다. 대통령은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도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싼 노사갈등 때 금융노조 관계자들을 은밀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간단히 치부해 버릴 일이 아니다.

▼미심쩍은 관계 형성 ▼

청와대모임에서 노 대통령의 설명이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느 한 집단이 권력 가까이 있게 되고, 자주 접하는 기회를 가질 때 그 집단엔 알게 모르게 힘이 붙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은연중 정부기관에 전파, 확산되게 마련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힘이다. 정치권력도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 아닌가. 앞으로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각종 개혁 명분의 운동과 권력의 관계를 미심쩍어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심쩍어 하는 이유는 더 잘 알 것 아닌가. 청와대 모임이후 대통령이 노조와 시민단체를 너무 감싸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어떤 이유로도 대통령이 편들기 인상을 주었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제는 민변 시절 노조고문 변호사의 틀에서 벗어날 때다. 대통령은 노조가 아니라 국민에게서 국정운영을 수임한 것 아닌가.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전술적으로 사회부문별 분리작전이 유효하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내년 총선거를 겨냥한 포석으로도 적절치 않다. 전선을 여기저기 벌인다면 그만큼 적대세력도 늘어나는 법이다. 사회가 어수선한 것도 분야별 편들기에서 비롯된 토벌작전 분위기 때문 아닌가. 엊그제 올해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노 대통령은 권력과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다시 강조했다. 바로 그것이다. 노조 시민단체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유지하면 된다. 그래야 그나마 사회가 건강해진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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