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코드' 끊고 큰판 보라

  • 입력 2003년 4월 23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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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에서 단연 많이 쓰이는 말이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의 ‘코드가 맞는다’이다. 그 ‘코드’는 이미 각종 인사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코드’ 맞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권을 잡았으니 그 고리는 단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처지를 알면서 노 대통령에게 ‘코드’를 끊으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권력안의 운동권 벨트 ▼

지난주 노 대통령은 문화일보와의 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DJ정부의 실패과정이 반복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과 오히려 개혁추진 세력과의 마찰과 갈등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토로였다. ‘DJ정부 실패 반복 불안’에 대해서는 다음날 ‘엄살 좀 떨었다’고 물을 탔지만, 집권세력 내부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의식해 부연한 것이지 본심은 그대로라고 본다. 게다가 ‘개혁세력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엄살도 없었으니 대통령이 그날 마음에 없던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혁세력과의 갈등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개혁정책과 관련해 주변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상징적인 시사다. 이는 국정방향을 놓고 대통령 생각과 주변 주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엊그제 대통령이 공무원, 노사모 회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노무현이 실패하면 30년 후퇴한다는 고언이 있었다’는 것도 뒤집어보면 유사한 압력 아닌가.

지금 노 대통령은 너무 많은 ‘코드’에 둘러싸여 있다. 한마디로 포위 상태다. 신동아 5월호 ‘노무현 정권의 파워 엘리트’를 보면 청와대의 경우 비서관 38명 중 14명이 운동권 출신 386세대이며 행정관에도 50여명이 포진해 있다. 그야말로 ‘운동권 벨트’가 구축된 셈이다. 정치권력 속성상 그 힘은 대통령과의 지근성(至近性)에서 연유한다. ‘권력 실세는 대통령 집무실 문고리를 누가 자주 잡느냐로 결정된다’는 말도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운동권 출신의 그처럼 많은 청와대 포진을 가볍게 볼 일인가. 역대 정권에 없었던 사건적 현상이다. 대통령의 정책회로에 운동권 시각이 매사 끼어든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386운동권의 저항성은 본질적으로 반권위주의 반재벌 반미 나아가 기존체제 부정에 그 뿌리를 두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말해서 민족주의 평화주의를 앞세우며 속으로는 좌파세력까지 뒤엉켰던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운동권의 과격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현 정권의 정책이 급진성향에 치우치지 않나, 개혁의 포장 속에 좌파가 전면 부상하는 것 아닌가 우려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사회주류를 교체하겠다는 이들의 호언 속에 정권 불안감은 번지고 있으며 안정과 통합이 자리를 못 잡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당선자 시절에 386운동권 참모들은 ‘대통령을 도구로 사용해 우리의 이상을 실현시키겠다’는 편지를 보낸 바 있고 취임 전 대통령은 운동권 출신 참모들에게 ‘이제 나를 놓아 달라’고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법인세 경감 검토 및 신보도지침 등 몇몇 정부시책을 놓고 부연설명이 꼭 따라야 하는 내부 난조로 나타났다. 그것이 ‘코드’의 기능인가. 여기서 묻고 싶다. 지난날 사회적 소용돌이 속의 투쟁 경력이 안정을 다진다는 현 정부의 개혁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투옥과 퇴학 전력이 일부의 민주화 노력으로 인정될 수 있겠지만 전부의 개혁능력까지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투쟁은 폭력적이고 폐쇄적이지만 개혁은 생산적이고 개방적이란 점에서 분명 코드가 다르다. 민주화 동지라 해서 모두 개혁 기수가 될 수는 없다. 투쟁은 개혁이 아니다. 이를 구분 못하는 것이 지금 사회가 혼미에 빠진 주요 이유다.

▼정권갈등 요인 잠재 ▼

더욱이 이념적 의식이 강하고 지난날 남에게 신세진 일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이념적 동지가 쉽게 ‘마이웨이’를 포기할 리 없다. 만약 권력 안에 또 다른 세력이 형성돼 맞부닥친다면 그때 상황은 정말 예측불허다. 대통령 주변에 운동권 세력이 많은 것은 정치와 권력의 변칙성을 너무 평이하게 본 까닭이 아닌가. 국정은 선거운동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정권갈등은 항상 권력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역대 정권에서 왜 측근정리가 있었겠는가. 지금처럼 계속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고난도 정치 과제를 안았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하면 큰판도 놓친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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