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검증대 오른 '50년 동맹'

  • 입력 2003년 5월 7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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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50년을 맞은 우방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이라면 국빈방문이 격에 어울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 아래 단계인 공식방문도 아니고 실무방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주 초 시작하는 미국 방문의 의전등급이다. 대통령의 방미를 준비하면서 여권에서는 정상회담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이나 텍사스 목장에서 갖기를 희망했다. 백악관보다는 좀 더 친밀한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미 의회 연설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것들이 여의치 않았다. 현안이 많은 판국에 양국 수뇌의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중요하지 의전형식이나 회담장소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회담 결과가 좋으면 된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북한 미국 중국간 3자회담에 대해서도 정부는 빠져도 좋으니 성과만 있으면 된다는 ‘대범한’ 자세를 보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일말의 기우(杞憂)가 드는 것은 미국의 냉랭해진 내심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다. 지난주 말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텍사스 목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만났다.

▼‘한목소리’ 순탄치 않다 ▼

노 대통령의 방미에서 한반도 안보문제와 한미간 경제문제 등 다루어야 할 현안이 많지만 핵심은 한미 동맹관계 검증이 될 것 같다. 동맹 50년인데 새삼스레 동맹관계 검증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한국은 미국이 변했다고 보고, 미국은 한국이 달라졌다고 보게끔 됐기 때문이다. 달라졌다고 보는 정도는 미국 쪽이 훨씬 강하다. 동맹불신에 가깝다. 지금 미국측은 ‘한국은 우리의 동맹국인가, 아니면 북한과의 민족공조를 강조할 것인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을 것이다. 이젠 잦아들었지만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 안에서 중재자 역할론이 제기됐을 때 미국측은 ‘한국은 과연 동맹국인가’라고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시했다. 근본적으로 노 대통령을 보는 미국측 시선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측은 노 대통령이 반미 분위기 속에 당선됐고 지지자들의 반미 성향이 강하다고 믿고 있다. 노 대통령도 대선기간 중 ‘반미’란 말을 놓고 불필요하게 오해를 부른 적이 있다. 미국측은 이들 반미세력이 평화주의자 민족주의자 좌파그룹과 엉켜든 가운데 평화적 대북협상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 정상이 지난주 전화통화에서 북핵 포기의 ‘한목소리’를 강조한 것도 저간의 갈등과 무관치 않다. 사전정지는 했다지만 정작 문제는 ‘한목소리’의 방법이다. 노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고 미국도 비슷한 표현을 쓰고는 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한반도가 ‘엄청난 폭풍’에 휘말릴 상황이 된다면 지금의 ‘한목소리’는 앞으로 동맹의 논쟁 잣대가 될 수 있다.

핵문제를 포함해 북한에 대한 한국정부의 당근은 길고 채찍은 짧다는 것이 미국측의 기본시각이다. 대북 자세를 둘러싼 갈등으로 주한미군 이전 문제를 포함해 한미관계 전반이 뒤틀리는 분위기다.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 논란은 무슨 연유이며, 재배치를 서두는 움직임은 또 무슨 까닭인가.

▼미국, 어떻게 달라졌나 ▼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발생 꼭 1년 후인 2002년 9월 분야별 방안을 명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라는 두툼한 문서에 서명했다. 미국의 안보전략은 미국의 가치와 국가이익을 결합시키는 미국식 세계주의에 근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남들이 받아들이든 말든 미국은 달라졌고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보라.

객(客)의 입장에서 이번 방문엔 찜찜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당당한 외교’를 외쳐 온 노대통령이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험대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당당한 외교의 기반은 힘이다. 군사력 경제력 과학기술력에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미국과 겨룰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국력은 아니다. 여론의 힘도 훌륭한 국력이다. 일치된 국민의 힘이 있다면 그처럼 든든한 배경이 어디 있겠는가. 노 대통령은 그런 힘을 갖고 있는가. 반미감정을 비롯해 곳곳의 갈등으로 민심은 되레 흐트러진 상태 아닌가. 미국 외교의 근간도 여론이다. 한국 내 반미 분위기로 미국에 반한감정이 일어났다면 반한심리를 누그러뜨려야 한다. 그 반대급부는 반미 분위기의 진정이다. 문제는 귀국 이후다. 달라지지 않으면 접점이 없을 것 같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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