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준상/교육개혁, 조용하게

  • 입력 2003년 3월 10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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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확실히 교육인적자원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것 같다. 고질적인 우리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한 듯하다. 취임 일성으로 교육부 관료들의 국민신뢰 회복 문제를 강조한 대목도 그랬고, 대학입시나 대학 육성에 대한 해결 방안 제시에서도 그러했다. 윤 부총리는 네티즌들의 여론 수렴에 관해서도 여간 비상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점은 참여정부가 내세운 교육개혁을 위해 ‘참’ 기수 역할을 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의 어법대로 말한다면 ‘핫바지’ 역대 장관들과는 교육 현안에 임하는 태도부터 달라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신임 교육부총리가 취임식에서 교육부 관리들에게 “나를 뺑뺑이 돌리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한 뜻을 모든 이들은 충분히 감지했을 것이다. 관료들의 ‘뺑뺑이 돌리기’ 관행에 제물이 된 채 바지저고리로 자리를 떠난 장관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공교육 붕괴가 바로 저들 교육부 내부 진주 마피아와 서울대 사대 마피아들간의 권력쟁탈전의 와중에 끼였던 핫바지 장관들의 무기력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면, 국민은 저들에게 당장 돌팔매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고, 그저 신임 장관으로서 일을 잘 해보자는 뜻에서 슬쩍 떠본 말이라면, 기선을 제압할 양으로 부총리 나름대로 계산한 언사일 것이다. 그러나 기 싸움도 너무 하면 내 몸부터 쇠잔해지게 마련이다. ‘수능시험 자격고사화’나 ‘교육정보 통합체제 운영 보류’ 발언이 나간 이후 교육계에는 이상기류도 흐른다. 국립대 총장의 발언이 그것 중의 하나이며, 교육 관료집단의 자괴감도 바로 그런 기류 속에 섞이고 있다. 서울대 총장은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침범해서는 안 되니 교육부 장관이 누가 됐든 상관없이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천명했다고 한다. 수능 비중을 강화하고 내신 비중을 축소하는 입시안을 추진 중인 서울대로서는 볼멘소리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윤 부총리는 자신의 입시 관련 발언으로 인해 100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또 한번 마음을 졸였다는 것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수능의 자격고사 전환 등 대입 개혁에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신중히 해야 한다. 수능이 자격고사로 격하되면, 일선 고교에서는 내신 뻥튀기기를 할 것이고, 그러면 고교교육을 신뢰할 수 없는 대학들은 학력저하를 호소하며 본고사를 강행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교직의 현안인 정보시스템운영을 재고하겠다는 부총리의 발언으로 교육행정가들과 교사들간의 대화가 다시 열리게 되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운영되면 일선 학교의 학사업무가 보다 편해진다는 이점이 있으나 학생 학부모 교사의 개인정보 유출 및 인권 침해 우려도 있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들간의 보다 진솔한 토론이 필요하고 여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여러 기술적인 난관을 극복하면서 지식정보중심 교육체제를 만들어온 국가적 노력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식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네티즌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교육을 위해서지, 그들의 힘에 굴복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교육부총리 후보 2명을 낙마시켰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환자의 건강을 위해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합당하지만 그 보호자의 의견에 따라 환자의 환부를 수술해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부총리는 교육에 관한 잡다한 식견과 요령보다는 교육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교육철학을 세운 뒤 여론에 진중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

교육개혁을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저항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줄 이유가 없다. 교육부 안에 마피아가 있다면 조용히, 그러나 단칼에 베어내어 국민을 편하게 만들어 달라. 한번 이기면 조금 배우지만, 한번 지면 모든 것을 다 배울 기회를 갖는다는 각오로 공을 던져 승리를 이끈 어느 야구선수의 각오를 부총리가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준상 연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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