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52…입춘대길(13)

  • 입력 2003년 2월 2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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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소진은 엄마의 목에 매달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후후후후후, 어깨를 잡고 발을 구르며, 후후후후후, 딸이 흘린 침에 미령의 목덜미가 축축해졌다.

“죽는다는 게 뭔지 아나? 엄마하고 안녕하는 거다.”

“싫어!”

“그럼, 엄마 어깨 꽉 잡아라. 그렇지, 그렇게, 됐나? 으자, 아이구 무거버라, 벌써 이래 무거버졌나.”

“후후후후후.”

“아이구, 움직이지 좀 말아라! 정말로 위험타, 자, 내려간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미령은 오른손으로 딸의 엉덩이를 받치고 왼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내려갔다.

“엄마, 노래.”

“엄마 지금 노래 못한다. 잘못해서 발이 미끄러지면 큰일난다.”

“노래!”

“아이구, 우리 소진이를 우째 당하겠노. 대체 누굴 닮았는고….”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우리 언니는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 어머니 호사 내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세요>

“복조리 값 받으러 왔습니다.”

“소진아, 오빠한테 돈 줘 봐라, 줄 수 있겠나?”

미령은 딸을 업은 채 부엌에 가서 벽에 걸려 있는 복조리를 들고 고무신을 꿰 신고 마당을 돌아 대문 앞에 서 있는 소년에게 보여 주었다. 소맷자락에서 1전짜리 종이돈 다섯 장을 꺼내 소진에게 쥐어주려 하였지만, 소진은 부끄러워하면서 엄마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구야, 부끄럼도 다 타나. 자, 여기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년은 5전이나 받은 것에 놀라 귓불까지 벌겋게 얼굴을 붉히고는 “고맙습니다!”라고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더니 발길을 돌려 뛰어갔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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