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철수/즉시 국정조사 시작하라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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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중대한 정치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현 정부가 일찍 사실을 밝혀 수습을 기도했으면 좋았을 텐데 실기해 이제 수습 불능상태로 빠져 차기 정권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대북 비밀송금이 북한을 달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대통령의 ‘통치행위’이며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해 덮어 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 반면 야당에서는 우선 사실부터 규명하고 대통령이 관여했다면 대통령이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이 문제에 관한 한 검찰에서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3일 인수위 회의에서 태도를 바꾸어 진상은 밝히되 그 주체와 절차 범위는 국회가 판단하도록 하자고 입장을 정리했다. 노 당선자가 사법처리방침에서 정치적 처리 방침으로 선회한 이유를 모르겠으나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북송금’ 검찰이 맡기엔 부담▼

대북 비밀송금설은 그동안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이 인지수사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산업은행의 비정규적인 대출과 돈 세탁, 현대상선의 자료 미제출 등 여러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더라면 벌써 진상이 완전히 밝혀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으며, 감사원도 고소 고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수사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서는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간의 입장차 때문에 수사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빠진 것 같다.

사실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장관이 검찰에 대한 일반적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며 검찰 간부가 현직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현실에서 대통령 임기 중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검찰에 사건을 맡긴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시간벌기와 면죄부 발부에 그칠 공산도 크다. 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검찰이 다룬다고 한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와도 관련돼 검찰이 시련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노 당선자가 검찰의 입지를 생각해 문제를 국회로 넘기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국회는 헌법상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국정감사권과 조사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북비밀송금 의혹을 규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매달려 이를 방치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하겠다.

대통령 교체기인 현재 국회의 기능이 강화되고 국회가 권력의 중심에 서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앞으로의 정치는 국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특히 국회의원 수가 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의 정상적인 운영은 불가능하다. 노 당선자가 국회의 현실을 감안해 다수당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야는 하루속히 국정의 안정을 위해 본회의를 열어 과도기적인 현재의 국정 공백을 메우고 의혹사건의 해결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국회는 여야의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의혹을 밝혀야 한다. 국회는 즉시 국정조사 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이며 특별검사법을 제정해야 하겠다.

그동안 정부가 해온 거짓말 때문에 국민의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진실이 밝혀져야만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안 되는지, 사법 처리가 가능한지도 결정될 것이다. 또 그 처리 방안도 어느 것이 국익에 합당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감상적 통일정책 再考 계기로▼

아울러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제대로 처리하게 되면 국회가 통일외교정책을 재평가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대북 비밀송금 의혹으로 일어난 한미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그동안의 대북 비밀송금이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개발에 기여했다면 그 책임도 물어야 할 것이며 재발 방지를 다짐받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의 ‘밀실 퍼주기’ 정책에 대한 남남(南南)갈등을 치유해야 하며 감상적 통일정책에 대한 반성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로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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