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정도언/채팅 중독 ‘마음의 병’ 깊어진다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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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채팅’이 급속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채팅사이트에서 원하는 종류의 대화방을 선택하면 된다. 영어사전에서는 ‘채팅’을 ‘잡담을 함’이나 ‘(특히 장난으로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정의한다.

최근 채팅 상대의 폭행 성폭행 강도 살인 등이 점점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가 채팅에 몰두하면서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인터넷 채팅이 사고(思考)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는 하나, 다른 한편에서는 부작용을 들어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유감스럽게도 대개 산발적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대화(對話)란 ‘마주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마주 대하니 자연 말투뿐 아니라 옷차림 표정 행동 등 상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도 자신을 상대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한도를 알게 모르게 정해 대처한다.

인터넷 채팅은 통상적 의미의 대화와 다르다. ‘대화방’도 가상의 공간일 뿐이다. 그 차이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에서 인터넷 채팅을 둘러싼 모든 문제와 위험이 출발한다. 익명성과 실시간 반응성으로 인해 인터넷 채팅은 상대가 자신을 한없는 포용력으로 이해해 줄 것 같은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 준다. ‘양으로 위장한 늑대’여도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으니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필자의 임상 경험에 의하면 특히 주부들은 마음속 갈등을 쉽게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시집 식구는 물론이고 친정 부모에게도 죄송해서 말을 못 한다. 경쟁관계이던 친정 동기간도 대상이 못 된다. 친한 친구한테도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상의 채팅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인터넷 채팅은 우주의 블랙홀과 같이 마음속의 고통, 좌절, 불안, 걱정을 다 빨아들인다. 보이지 않으니 창피하지도 않고 털어놓으니 속도 시원하다.

그러나 사람의 속을 어떻게 알겠는가. 상대가 ‘내 마음을 읽어내고, 내 마음의 보안시스템을 무장해제시키며, 내 마음속에 상대에게 종속되는 바이러스를 심어 줄 수 있는’ 악의에 찬 ‘심리 전문가’라면 이미 전투는 끝났다. 이미 당신 마음속의 어느 단추를 누르면 당신이 허물어질지를 다 알아챈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타인에게 속속들이 말한다는 것은 ‘마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개해 버리는 일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로그인’해서 자신을 조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10년 이상의 전문적 훈련을 받아 책임감 윤리성 객관성 신뢰도를 인정받은 정신과 전문의 앞에서도 환자들은 흔히 경계하며 머뭇거린다. 이런 어려운 일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쉽게 일어나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인터넷 채팅과 같은 식의 의사소통은 날로 확장될 것이다. 유일한 대책은 심리적 무장이다. 컴퓨터 앞에 ‘대화와 인터넷 채팅은 전혀 다르다!’라고 써 붙이자. 채팅 상대를 구체적 준비 없이 만남으로써 사이버 공간을 현실의 공간으로 연장하는 일은 ‘딜리트(삭제)’ 키가 전혀 듣지 않는 위험한 일이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만이 보호받는다.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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