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진상규명한다며 수사 유보하나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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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대북 송금 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3원칙은 ‘진상은 규명하되 파장은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진상은 밝히되 국익을 고려해야 하고 진상규명의 주체와 절차는 국회가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은 결국 사법적 단죄를 하지 않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 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희망을 밝힌 것이다. 검찰이 격론 끝에 수사를 유보키로 한 것도 노 당선자의 의도를 헤아린 결정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으므로 국정조사는 불가피하게 됐다. 또한 공을 넘긴 여권은 야당이 요구하는 특별검사제 도입도 거부하기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여권이 의도한 정치적 해결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유보는 결과적으로 수사의 일시 유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은 여권 인사들이 거듭 원칙을 얘기하면서도 그와 상충하는 전제나 조건을 달고, 전모가 드러나지도 않았는데도 지레 그 파장과 효과를 염려할 때부터 예견됐다. 그러나 여권이 간과한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정치공방이 계속되면 의혹과 함께 여권의 부담만 늘어난다. 이는 새 정부 출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둘째, 무엇이 국익인지는 자의적으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의혹 증폭으로 인한 국론분열이야말로 국익을 저해할 수도 있다. 셋째, 미리 정치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리고 진상규명 방법은 국익과 상관이 없다.

검찰도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전에 적용 법규나 사법처리 대상을 따지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검찰은 수사기관이지 의혹해명기관이 아니다”라며 ‘검찰의 철학’ 운운하는 것도 의혹 있는 곳에 비리와 불법 있다는 경험칙과 배치된다.

여권과 검찰이 일단 공을 피했지만 그 공이 조만간 화살이 되어 되날아올지 모른다. 대북 송금 문제는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국민적 의혹인 만큼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라도 소상히 진실을 밝히는 게 그나마 여권과 검찰의 출혈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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