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석연/아무나 ‘해석改憲’ 하나

  • 입력 2003년 1월 30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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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상속증여세의 위헌논란이 그 하나다. 과세대상이 되는 소득을 세법에 일일이 열거하는 대신 과세규정이 없더라도 일정한도의 경제적 이득을 무상으로 얻으면 모두 과세하겠다는 것이 완전포괄주의다. 물론 변칙, 탈법적인 부(富)의 이동을 방지해 조세정의를 확립하려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명색이 헌법을 전공했고 헌법재판 실무에 종사해온 필자의 소견으로는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입법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조세법률주의는 납세의무자, 과세물건, 과세표준 등의 과세요건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경제생활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려 한다. 따라서 세법에 명확한 과세요건의 설정 없이 포괄적으로 과세하겠다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의 핵심인 과세요건 명확주의에 반한다. 그뿐만 아니라 과세 관청의 자의적 집행을 허용함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미운 놈 손봐주기’로 악용될 우려가 있어 조세평등주의에도 어긋난다.

▼완전포괄주의는 위헌▼

헌법재판소 역시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조세법규에 대해서는 일관해 위헌 판단을 해오고 있다. 그리하여 현행 유형별 포괄주의에 대해서도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헌법은 조세법률주의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으며, 일본의 경우 우리 헌법과 달리 과세의 근거만을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우리와는 논의 차원이 다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노 당선자는 “완전포괄주의는 위헌이 아니며 헌법해석을 바꿔서라도 완전포괄주의를 반드시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헌재가 상속증여 요건에 관한 법규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헌법도 ‘한번 손을 보자’는 것이 사회적 합의라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당선자가 법률가로서 위헌여부에 대한 견해를 표명할 수는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현행 헌법상 헌법에 관한 최종적인 해석권은 헌재에 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엄격히 신분이 보장되는 재판관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헌법재판(해석)을 하며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철칙이다. 만약 완전포괄주의가 입법화된다면 위헌심판대에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헌법해석을 바꿔서라도 도입을 관철시키겠다는 표현은 헌법상 권력분립주의에 위배되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본다.

우리 헌법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 질서란 두 축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법치주의 내지 적법절차를 그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 개정 시에도 이 기본질서는 개폐할 수 없는 한계사항이다. 일부 논자들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이 경제에 관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각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에 관한 국가의 개입이 당연한 것이고 더욱 요청되어진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원칙’과 ‘예외’, ‘기본이념’과 ‘보충원리’를 혼동한 것이다. 헌법은 어디까지나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한다’는 대전제 하에 국가의 개입은 그 기본을 흩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외적인 조치여야 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나아가 헌법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려면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해, 그것도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서만 가능하도록 못박고 있다(제126조). 이러한 절차를 무시한 민간기업의 경제활동에 관한 정부의 간섭(정책)은 위헌적인 월권행위이다.

▼권력분립원칙 지켜야▼

현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책으로 추진했던 빅딜 등의 경제구조 조정정책이 시장경제적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위헌적으로 진행된 결과, 결국 특정기업과의 새로운 정경유착 의혹과 부패만연이라는 사회경제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졌음을 차기정권 담당자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석연 변호사·전 경실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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